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최현숙의 말 쓰기] 자기가 뭐라고 울분에 서러움까지

등록 2018-02-18 18:43수정 2018-02-18 19:15

사진 박김형준 사진가
사진 박김형준 사진가
최현숙
구술생애사, <할배의 탄생> 저자

설 연휴 전날 아들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며칠 전 그가 죽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생각보다 빠른 죽음이다. 2015년 3월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들의 담당 지역이 교체되면서 받은 명단에 그가 있었다. 자기 소유의 40평대 아파트에 사는, 성질이 아주 까탈스러운 76세 남성 독거노인. 연락처는 집 전화밖에 없었다. 전임자도 사무국도 미리 주의를 주었다. 주 2회 ‘간접 확인(안부전화)’은 한 번만 하고, 주 1회 ‘직접 확인(방문)’은 아예 안 해도 된단다. 핵심은 안부 확인은 하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거였다. 툭하면 구청에 민원을 넣는단다. 막상 해보니 주 1회의 통화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통화 전후로 심장을 쓸어주어야 했다.

“안 죽었어요!” “왜 또 잠을 깨워요?” “이렇게 해서 대체 한 달에 얼마나 벌어요?” 같은 반응도 그렇지만, 비하와 경멸을 잔뜩 묻혀 “에”만 서너 번 연발하다 끊는 반응 역시 기분을 더럽게 했다. 그는 귀찮겠지만 안 죽은 걸 확인은 해야 하니, 안 받는 날은 여러 번 전화했다. 이런 노인을 서비스 대상자에서 빼버리는 건 간단하지만, 문제는 독거노인 복지의 가장 우선적 업무인 ‘고독사와 자살 예방’에서 이런 노인이 가장 고위험군이라는 거다. 젊어서 그럭저럭 잘나갔고 지금도 가질 만큼 가진데다, 복지를 동정으로 여겨 기분 나빠 하며, 다른 사회관계도 거의 없는 자발적 소외형의 남성 독거노인.

2016년 11월에 있었던 ‘65세 이상 노인 전수조사’에서, 퇴직하기 전 한번은 만나보자는 작심을 했다. ‘도대체 만나기까지 할 게 뭐냐’는 거절에 ‘아유, 그래도 통화를 하려면 얼굴이 떠올라야…’ 어쩌고 해서 마침내 그의 아파트에 들어섰다. 휑하고 깔끔했다. 거실 한쪽에 쌓여 있는 2리터 생수 묶음들과 햇반 박스들, 비닐이 씌워진 채 스탠드 옷걸이에 주르르 걸려 있는 양복과 와이셔츠들.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장교복과 군모가 몸만 빠진 채 벽에 걸려 있는 걸 보고 아차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거기서 시작했다. 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해 무공훈장들과 함께 약간의 부상. 군대에 더 있다가 마흔 중반에 전역하고 보훈처 안팎에서 돈을 많이 벌어 퇴직. 외아들네 식구가 있고 부인과 사별. 보훈처 얘기부터는 안기부·기무사·청와대·국방부까지 한데 뒤섞였고, 가닥을 놓친 나는 어차피 다 한통속이라는 거만 알겠는데 그는 신바람을 내다 말고 어디선가부터 울분도 토했다. 요즘 젊은것들에 늙은이들 다, 촛불이고 태극기고 다, 박근혜도 문재인도 다 썩어 빠졌다며 열을 내다가, 이젠 사는 것도 늙는 것도 신경질이 나고 서럽단다. 자기가 뭐라고 울분에 서러움까지…. 웬만한 건 구경 삼아서라도 견디는 편인데, ‘그래도 새누리당’ 소리엔 신경 줄을 놓칠 뻔했다. 핸드폰을 묵음으로 돌려 귀에 대고 “네, 죄송해요. 지금 ○○○ 어르신 댁이에요. 곧 들어가요” 하고는, 그에게는 복지센터 회의에 늦었다고 했다. 자기 폰을 주며 내 폰 번호를 저장해달라고 했다. 앞으로는 전화 말고 핸드폰으로 연락을 하라며, 센터에는 폰 번호를 주지 말라고 했다. 현관 밖까지 나와 ‘얘기 들어줘서 고맙다’고까지 했다.

2016년 말까지의 안부 확인과 퇴직 후 그가 가끔 한 통화에서 그는 오락가락했다. 억울하다고, 죽고 싶다고, 술을 먹자고, 할 얘기가 더 많다고. 더 듣지는 못하겠고 기록 삼아 통화는 꼬박꼬박 녹음했다. 올해 지방선거 출마를 위한 의원직 사퇴 규모에 따라 자유한국당이 원내 제1당이 될 수도 있단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