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한 친구의 지나가는 저 말 한마디에 빵. 터졌다가도, 이내 깊은 각성에 사로잡혔다. 그러게. 워마드는 연대 안 하나? 여성주의의 한 단면을 트집 잡아 비웃으려는 게 아니다. 저 짧은 질문 속엔 이 모든 사태와 그에 참여 중인 수많은 반응들을 요약하는 생각의 구조가 들어 있었다. 정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중이다. ‘나도 그랬었다’는 미투(Me Too), 그리고 ―어떤 점에선 미투보다도 더 중요해 보이는― ‘너와 함께이리라’는 위드유(With You). 과거 속에, 그 망각 속에 그저 그냥 묻어두고 홀로 삼켜야 했던 그 추악, 상처, 비애를 드러내고, 그 용기를 어떤 특별한 자격요건 없이도 자유로이 서로 응원하는, 풀이라면, 탈 줄 아는 풀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진정 들불이다. 이것은 연대지만, 그 옛날의 연대 방식과는 조금 다른 연대다. 돌아보건대 저 옛날에도 연대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에 호소하던 연대, 즉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당화되던 의식화된 연대였다. 반면 지금 일어나는 위드유는 이데올로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연대다. 여기선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 이성이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인다. 더 이상 이데올로기에 의해 동원되는 연대가 아니라, 그만큼의 강제성은 없으나 그만큼 자발적인, 그만큼 느슨하지만 또 그만큼 끈질긴 연대, 요컨대 공감(共感)의 연대인 것이다. 심지어 단어도 아름답다. 공(syn)+감(pathos). 공감의 연대가 어느 정도 우월해졌냐면, 이제 그에겐 이데올로기는 적도 아니다. 공감의 적은 오히려 왕따다. 왕따는 비공감(a-pathy)이기 때문이다. 위드유 하는 이들은 이 사회, 이 집단기억에서 왕따를 없애려고 한다.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공감의 적이 된다면, 그것이 왕따효과를 내포하는 한에서다. 그래, 돌아보면 저 성추행과 성폭행이 일어났던 모든 공동체는 왕따의 구조에 기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이데올로기스러웠다. 발설하면 넌 왕따야, 나가고 싶어? 바깥은 없어, 여기서 나가면 절벽이야, 그냥 떨어져 죽는 거야…. 공감은 바로 그네들이 없다고 했던 그 ‘바깥’을 만드는 행동이다. 단지 손을 잡음이 아니라, 미투(Me Too)가 없다던 바깥으로 몸을 던지고 말을 던질 때, 그를 품는 에어백을 생산하는 행위다. 그 폐쇄적인 왕따 공간에 숨구멍을 뚫고, 그에 숨을 다시 돌도록 하는 바로 그 바깥을. 난 여성주의의 본질이 바로 이 바깥의 산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여성주의는 공감주의이고, 역으로 모든 공감주의는 여성주의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의 여성주의가 선전해갈 때, 왕따는 오직 예술의 특권으로 남으리라. 왕따 될수록 위대한 건 아직 예술밖엔 없으니까. 아 참, 워마드. 그런 점에서 훌륭한 예술 작품이다. 스스로를 왕따 시키는 연대라는 형용모순은, 모순의 미를 구가했던 비스콘티의 뺨을 치는 미학일 뿐이다. 세상 모두가 위드유(With You)를 외치고 있을 때 위드아웃유(Without You)라는 용맹한 자기모순 속에서, 남의 뺨을 치기 위해 그만큼 자기 뺨도 쳐야 하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조히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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