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박김형준 사진가
구술생애사 <할배의 탄생> 저자 기억에 의존해 개인의 삶을 돌아보는 구술생애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최근 이어지는 일련의 기억투쟁들은 외람되지만 흥미진진하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정치권력들이 막판에 하는 말과 행태들을 보면서는, 짜릿함과 고소함을 넘어 자괴도 자숙도 하게 된다. 얼마 전 한 방송사의 앵커 브리핑에서는, 이명박의 자전 작업 관계자가 말한 ‘회상성 기억조작’이라는 용어와 함께 ‘이명박의 자기 정당화는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일 수 있다’는 설명을 인용했다. 막상막하 박근혜를 포함해 두 사람이 기억을 조작한다는 것엔 동의하지만, 조작된 기억이 자신에게 진심이 되어버렸을 거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의 농단은 흥할 때든 망할 때든 집요하게 전략적인 대국민 사기이다. 절치부심의 남은 재판과 징역살이는 물론 계속 이어질 정치권의 흥망성쇠 속에서, 그들 집단은 언제라도 ‘역사 바로 세우기’ 운운하며 기억과 해석을 조작할 것이다. 안희정 건의 경우, 말 그대로 한 방에 훅 가더라. 그러면서도 정치는 접되 법적 처벌은 결코 안 받겠다는 포지션이다. 카메라 앞에서 얼굴은 자괴와 송구를 전략하되, 차후 재판에서 있을 해석투쟁을 전제해서 발언은 ‘애매’가 전략이다. ‘합의된 관계’라는 법 해석을 따내기 위해 치밀하고 비열할 기억조작의 재판 장면들이 자못 궁금하다. 좀 버텨본 정봉주 건의 경우 가장 호기심이 돋는 부분은, ‘카드 내역을 그가 대체 언제 확인했을까’이다. 만에 하나 만난 기억이 없더라도, 그 막중한 사태에서 가장 먼저 카드가 떠올랐을 것은 자명하다. 그걸 끝까지 숨길 수 있다고 믿고 수차례의 강렬한 오리발을 내밀며, 그토록 일관되고 당당한 피해자의 주장을 뒤집을 수 있다고 오판하다니. ‘10년 만의 정치복귀’가 그토록 간절했고, 김어준류의 공작 운운하는 썩은 동아줄이라도 우선 잡아보자 싶었나 보다. 해석투쟁의 명장면은 ‘세월호 7시간, 검찰 수사 결과 발표’를 해석하는 한국당 홍지만의 논평으로, 가히 독보적이었다. 원문 중 일부 단어와 문구들만 오려 짜깁기하고 덧칠해서, 원문과 정반대의 해석을 일단 우겨는 보는 창작물의 사례다. ‘정윤회씨와의 밀회설, 종교의식 참석설, 프로포폴 투약설, 미용 시술설’ 등을 깜빡 까먹었는데, 홍이 기억을 살려주었다. 죽기 전에 꼭 좀 알고 싶다. 참, ‘세월호를 불쏘시개 삼아’라는 문구만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던 우리를 일으켜준 것은,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기억을 가지고 남은 삶을 살아야 하는 유가족들이다. 하여 우리들의 약속은 “기억하겠습니다”이다. “제발 그 더러운 아가리에 세월호의 세 자도 올리지 말라. 역겨움이 비수가 되어 너희들 모가지를 다 따버리기 전에 입 닥치라!!!”, 예은 아빠 유경근씨가 엊그제 페북에 올린 글이다. 4·3 항쟁 70주년을 맞아 과거의 정치권력에 대항하는 기억투쟁과 해석투쟁이 활발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주인공은, 과거 신문기사를 수정해 정부의 실책을 삭제하고 기억과 역사를 조작하는 ‘진리부’ 기록국 직원이다. 모진 고문과 죽음에 닥쳐 자기 고유의 기억과 해석이 어떻게 변형되었든, ‘빅 브러더를 타도하라’는 그의 일기장 기록은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정치권력의 목적은 권력과 지배 체제의 유지이며, 이를 위해 시민의 기억과 해석을 조각내서 원하는 모델로 재조립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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