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캔자스주 태생의 휴 무어가 1907년 하버드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그의 매형 로런스 루엘런은 생수 자동판매기 발명자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루엘런의 자판기는 세간에 화제를 뿌리긴 했지만 문제점을 한 가지 안고 있었다. 여기에 사용되는 컵의 재질이 도자기여서 깨지는 일이 잦았다.
휴 무어는 도자기 컵의 대체재를 찾던 중 깨지지 않는 종이를 떠올리게 되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이듬해 자판기용 종이컵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일회용 종이컵은 편리한데다 위생적이라는 찬사까지 받으면서 일상생활 현장 곳곳에 확산됐고, 본격적인 자판기 시대를 열었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 국내 일회용 종이컵 사용량은 257억개였다. 젖먹이까지 포함한 국민 1인당 하루 1개 반 정도 쓴 셈이다. 직장인들에 한정하면 1인당 3~4개씩 된다는 통계치도 있다. 커피전문점 확산 등을 볼 때 계속 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환경부가 ‘재활용 쓰레기 대란’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일회용 컵 보증금제 재도입을 포함한 폐기물 감량 정책을 마련해 이달 말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사용한 일회용 컵을 매장에 반납할 경우 일정 보증금(50~100원)을 돌려받는 제도로, 2002년 도입돼 실시되다가 10년 전인 2008년 3월 폐지됐다. 법률적 근거가 부족하고 보증금 관리가 불투명하다는 등의 이유였는데,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책에서 비롯됐다.
일회용 종이컵의 재활용률은 5~10%로 추정되고 있다.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매립·소각되고, 종이로 분류되더라도 컵 내부에 코팅 처리된 폴리에틸렌 때문에 쓰레기로 취급되기 일쑤다. 분리보증금제 부활이 종이컵 재활용률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까? 매형의 사업 고민을 해결해준 휴 무어의 발명품이 110년 뒤 우리 사회에 고민을 떠안기고 있다.
김영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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