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를 할 때면 호소력이 강하게 하여 시청자들의 심금을 틀어잡고 인터뷰, 좌담회, 기념무대에 나서면 대중과의 호흡을 다양하게 하며 담화를 발표할 때면 적들의 간담이 서늘하게 맵짜게(옹골차게) 딥새겨되는(공격하는) 만능의 화술적 재능.” 2008년 북한의 월간화보 <조선> 4월호가 조선중앙티브이 아나운서(방송원) 리춘히에 대해 쓴 표현이다. 올해 75살,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를 나와 1971년 방송원이 된 리춘히는 입사 3년 만에 간판급이 됐다. ‘인민방송원’ ‘노력영웅’ 호칭을 갖고 있는 그는 평양 최고 미용실 창광원과 피복연구소에서 머리 손질과 최신 유행 옷을 무료나 싼값에 제공받는 ‘협찬력’도 자랑한다. 하지만 외부세계엔 주로 격앙되고 호전적인 억양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늘 분홍색 한복이나 양장을 입고 핵실험 등 주요 담화를 발표하는 그를 두고 <가디언>은 “북한의 핑크레이디: 세계의 종말을 선언하려는 뉴스캐스터”라고 불렀다.
매일 3시간씩 소리 내어 신문읽기를 하는 노력파이자 실수 않기로 유명한 리춘히가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다롄 회동을 전하며 낯선 모습을 보였다. 정리가 덜 된 머리로 금테 돋보기 안경을 끼고 나와 연신 종이를 넘겨가며 읽다가 말을 더듬거나 같은 문장을 반복하기까지 했다. 김 위원장의 외교행보가 워낙 전격적이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탓이라는 해석이 나오는데, 인터넷 등에선 ‘핑크레이디의 변신’ 등 친근감 있는 표현까지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고화질(HD)급 방송이 시작되고 남녀 아나운서 공동진행이 등장하는 등 북한 방송도 변화가 크다고 한다. 무엇보다 뉴스 속보가 빨라졌다. 길게는 몇달씩 사건을 숨기던 이전 시대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내달 그 특유의 어조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스엉~고옹~”(성공)을 발표하는 핑크레이디의 모습을 전세계인들이 볼 수 있길 기대한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