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영화배우들은 아카데미상의 연기 부문 후보로 오르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여우주연상의 후보로 두 차례 올라 두 번 모두 수상한 배우가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릿 오하라 역과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슈 듀보이스 역을 맡았던 비비언 리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모로 상찬을 받은 배우이기에 그 덕을 보았으려니 생각할 사람들도 없진 않겠지만, 리는 오히려 육체적 외관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진지한 연기자로 보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많았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더욱더 연기에 충실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영화배우로 명성을 얻었지만 본디 무대에서 경력을 쌓아갔던 연극인이었다. 버나드 쇼와 같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에도 모습을 보였다. 또한 오필리아, 클레오파트라, 줄리엣, 맥베스 부인 등 셰익스피어의 고전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의 배역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렇지만 미모에서 비롯된 내적 갈등은 병적인 집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는 연기자로 기억되고 싶었지만 대중은 외모에만 관심을 보여 점차 연기에 대한 자신감까지 잃게 된 것이었다. 결국 조울증에 빠진 그는 같이 작업을 하기가 어려운 연기자로 꼽히게 되었다. 로런스 올리비에와의 두 번째 결혼마저 사태를 악화시켰다. 양측이 난관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결혼이었지만 로런스 올리비에의 연출을 비비언 리가 망쳐놓았다는 식의 악평은 큰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부부싸움이 잦아지고 그로 말미암은 외도와 그에 이어진 스캔들이 뒤따른 상태에서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정신이상자 듀보이스의 배역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비비언 리는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심한 흡연에서 비롯된 폐결핵이었다. 올리비에의 사진을 꼭 쥐고 죽었다는 그의 장례식이 끝난 뒤 올리비에는 그의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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