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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주 보통의 마을 9] 옥상으로 가는 인간 벨트

등록 2018-08-22 18:16수정 2018-08-22 19:14

전재우
무지개집 입주자

일단 본격적인 옥상 텃밭을 만드는 일에 입주자들 내부에서 의외의 저항이 있었다. 옥상의 시설 정비가 필요했던 거지, 텃밭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지 않나, 하고 싶은 사람만 하지 왜 크게 일을 벌이느냐, 언제까지 할 것이냐, 옥상 아래층에 사는 이들이 불편하진 않겠느냐 등 미리 논의했어야 할 사안, 꾸준히 배려하고 챙겨야 할 사안이 포진해 있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지칠 판이었지만,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으면 수습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중에는 오랜 공동 주거생활로 협상에 잔뼈가 굵은 셰어하우스의 달인이 있었다. 그가 나서서 조정 스킬을 발휘했고 모두 조금씩 양보해서, 텃밭사업을 진행하되 규모는 줄이고, 작업도 관심 있는 사람들만 텃밭 팀을 꾸려서 전담하는 걸로 결정했다. 땅땅땅!

그런데 기초공사를 마치고 흙과 화분이 도착하는 날, 갑자기 택배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흙이 너무 많아 도움이 필요하니 집에서 대기하고 있으란다. 아무도 집에 없을 시간이라 저녁 때 오면 안 되냐고 했더니, 우리 짐이 너무 많아 다른 짐들을 배송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역정을 내신다. 하는 수 없이 입주자 긴급 수배령을 내렸다. 한명 한명 직접 전화를 돌렸고 가까스로 배송시간 전에 두 사람을 대기시킬 수 있었다.

한시간쯤 지난 후 온라인 단체방에 사진 한장이 올라왔다. 집 옆에 사람 키만 한 산이 솟아 있는 사진이었다. 몇평 되지 않는 옥상 텃밭에 그렇게 많은 흙이 들어가는지 미처 몰랐던 거다. 행여 비가 오기라도 하면 산사태가 나서 이웃집에 민폐를 끼칠 수도 있는 일, 옥상까지 서둘러 옮겨야 했다. 사다리차 없이 6층까지 계단으로?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에? 서너명으로는 엄두도 못 낼 일인데? 그런데,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묘수는 집에 사람이 제일 많을 때 일을 벌이는 것밖에 없었다. 이튿날 밤 9시, 집에서 쉬고 있는 사람을 전부 소집했다. 문간방 청년들과 사랑방 손님, 때마침 방문했던 주택협동조합 이사장님도 얼떨결에 동원되었다. 단순 반복 작업에는 분업이 답이다. 옥상까지의 계단은 기다란 컨베이어 벨트가 되었고, 우리는 중간에 한명씩 서서 기계처럼 흙포대를 올리기 시작했다.

효율적인 만큼 단점도 있었다. 한명이 중간에서 속도를 높이면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포대가 찢어져 흙이 쏟아지기도 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모두 땀범벅이 되었고 겨우 운반을 마치자 다들 기진맥진했다. 원래 계획은 모인 김에 텃밭틀 설치까지 하는 거였지만, 누구도 더 이상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대신 모여 앉아서 막걸리와 파전으로 소모된 체력을 보충했다.

반시간 만에 일을 끝내고 두시간 술을 마셨다는 건 안 비밀! 남겨둔 일감은? 휴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모여서 눈곱을 붙인 채 해치웠다. 이제 가을 작물들을 선별해서 심는 일만 남았다. 부디 올해는 무사히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식물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다. 몇달 부지런을 떨면 옥상에서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수확한 쌈채소와 함께 신나는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겠지. 맞다. 텃밭은 핑계, 늘 뭉쳐서 놀 궁리만 하는 무지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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