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나는 ‘서울로 7017’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순한 이유다. 못생겼기 때문이다. 동시대 서울시민들의 경관에 대한 안목은 이 의문투성이 공간보다 훨씬 높다. 메트로폴리탄 서울의 심장부에 어떻게 이런 조악한 공간이 만들어졌을까. 4년 전 가을, 박원순 서울시장은 뉴욕의 하이라인에 올라 서울역 고가의 공원화 프로젝트를 선포했다. “서울역 고가는 도시 인프라 이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갖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므로 “원형을 보전하면서… 하이라인 파크를 뛰어넘는 녹색 공간으로 재생시켜 시민에게 돌려드리겠다.… 서울역 고가가 관광 명소가 되면 침체에 빠진 남대문시장을 비롯해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다. 산업 유산이므로 남기고 재생시켜 하이라인처럼 명소로 만든다는 낭만적 논리에 광속의 전시적 공간 정치가 결합했다. 소통과 과정을 존중하며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신념을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박원순 시장. 그러나 이 사업에서만큼은 달랐다. 서울의 관문 경관을 가로막고 있는 개발 시대의 고가도로가 과연 원형대로 보전해야 할 근대 산업 유산인가에 대한 신중한 토론은 당연히 생략됐다. 사업 당위성에 대한 의구심, 정치적 목적에 대한 의혹, 서울시의 소통 부족, 설계공모 과정과 디자이너 지명초청 방식 논란 등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지만, 정해진 일정대로 직진했다. 2015년 5월, 하이라인 벤치마킹 선언식 이후 8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설계공모 당선작이 발표됐다. 네덜란드의 스타 건축가 비니 마스의 당선작은 서울역 고가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탈출했다. 별도의 콘텐츠를 투입한 것이다. 당선작 ‘서울수목원’의 콘텐츠는 단순 명료하다. 공중 보행로를 수목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서울의 환경 조건에서 식재 가능한 모든 종류의 수목을 원형 ‘화분’에 심어 퇴계로에서 중림동까지의 고가 구간에 ‘가나다순’으로 배치했다. 한 조경가의 평을 빌리자면 “어느 이단 종파의 선교책자 표지”가 연상되는 당선작의 이미지 컷이 지하철역 곳곳에 걸렸다. 대선 시간표는 예정과 달라졌지만 서울역 고가의 시계는 그대로 갔고, 2017년 5월, ‘서울로 7017’이 완공됐다.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보존하고 재생해야 한다는 근대 산업 유산이 “세상에서 가장 긴 화분”으로 변신했다. 주변 지역의 연결과 보행 중심 도시를 강조한다는 의미로 새 이름 서울‘로’ 7017을 달았다. 이곳은 수목원인가 길인가. 육중한 화분에 심긴 애처로운 가나다 수목들을 살려내기 위해 많은 공무원과 시민 봉사자가 폭염 속에서 땀을 흘린다. 이제 서울역 고가는 유행처럼 번진 재생과 재활용 노스탤지어, 녹색 공간의 착한 이미지에 편승한 센티멘털리즘, 포퓰리즘 공간 정치의 속도전, 토론과 합의가 생략된 공간 설계가 한 번에 뒤섞이면 어떤 졸속의 도시 공간이 탄생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 연구감으로 남았다.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줄지어 대기 중인 공간 정치 프로젝트들은 서울역 고가를 교훈 삼아야 한다. 지혜를 모으고, 천천히 해야 한다. 서울의 대표 경관 ‘서울로 7017’을 다시 걸었다. 산업 유산 특유의 구조미나 숭고미도 없다. 경쾌하고 세련된 도시미도 없다. 풍성한 자연미도 없다. 의도적인 키치도 아니다. 이제 서울역 고가가 근대 산업 유산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동시대 서울의 도시 미학이 이 정도라는 게 부끄러울 뿐이다. 잘생긴 서울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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