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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정의 택시오라(aura)] 택시는 울기 좋은 방이다!

등록 2018-09-02 18:21수정 2018-09-02 19:02

김민정
시인

다른 영수증은 그냥 버려주세요, 해도 택시에서 내릴 때만은 꼭 영수증 저 주세요, 하는 게 나다. 첫 방문이지만 문패와 번지수가 정확한 집에 찾아가 확실히 내 용건만 간단히 하고 나온 듯한 심플한 그 느낌. 가계부랍시고 장부를 하나 사서 나날이 그 노트에다 택시 영수증을 붙여나가는 이유는 내가 길 위에 있던 그 시간만큼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명이 되기도 해서다.

내가 차에 오른 시간과 내가 차에서 내린 시간 사이의 철저한 살아 있음, 그 생. 그만큼의 시간을 온당한 요금으로 치렀으므로 필시 그만큼은 온전한 내 것이 되는 그 생의 정정당당함.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앞으로 달려나가는 듯하지만, 그와 같은 속도전에서 뒤로 더 뒤로 천천히 거꾸로 달리는 택시를 탄 것만 같은 경험도 하게 될 때가 있다. 예컨대 뒷좌석에 앉은 채로 소리 죽여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멈추지 않는 통곡으로 허리를 못 펴고 있는 나를 가만 지켜봐야 하는 순간이 그것이기도 하리라.

참 이상하지 않은가. 나를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내 울음이 더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때의 그 울음이 더한 극한의 맑음을 자랑한다는 연유가 말이다. 내 울음의 발산지가 내 방, 내 사무실, 내 단골 술집이 아니라 택시 뒷좌석이라는 아이러니, 이는 기사와 승객 사이라는 객관적 거리 안에서 우리의 본성이 더욱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터져 나올 수 있어서가 아닐까.

단짝 친구가 제 의지로 세상을 등졌을 때, 그 소식을 외국에서 들었을 때, 한국에 오자마자 발을 동동 구르다 할 수 있는 일이 콜택시 회사에 정동진까지 가나요? 묻는 일이었을 때, 가는 내내 나는 소리 죽여 울고 기사님은 간간 창문을 내렸다가 올리는 일 말고는 내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친절을 베풀었을 때, 숙소 앞에 날 내려주며 울고 싶으면 우소, 그런데 시간이란 게 아주 금방 갑디다요, 무심히 말을 던졌을 때, 그러고 바라본 바다 앞에서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의 세기를 눈물 그친 눈으로 아주 덤덤히 바라볼 수 있었음은 과연 어디서 나온 삶의 의지라 할 수 있을까.

택시 안에서 말다툼도 안 했는데 남자친구가 느닷없이 저 앞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차 좀 세우라 했을 때, 그러고는 휭하니 내리면서 차 문이 부서져라 쾅 닫았을 때, 영문 모르는 기사님과 마찬가지로 영문 모르는 나 사이의 어색한 침묵을 뚫고 목적지였던 강남역이 아니라 내가 사는 집이 어디냐고 기사님이 물었을 때, 결국 인천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대성통곡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이나 눈치로부터 나 몰라라 해도 됐을 때, 그러고 도착한 집 앞에서 나는 기사님이 주는 휴지로 코를 휭휭 풀고 제과점에 들어가 팥빙수를 시켜 먹으며 젖은 얼굴을 말릴 수 있었음은 과연 누구로부터 나온 삶의 센스라 할 수 있을까.

눈물이 나면 나는 운다. 그 울음의 편안한 방이 되어주는 택시 안에서 나는 자주 울곤 한다. 물론 그전에 어딘가 불편할 것 같으면 아무것도 묻지 말아주십사, 도착할 때까지 뒤도 보지 말아주십사, 부탁하는 걸 잊지 않는다. 웬만하면 그렇게들 행해주신다. 내릴 때 고마우면 또 금방 타고 싶어지는 게 택시다. 그래서 8월에만도 부산에서 파주까지, 전주에서 파주까지, 경주에서 파주까지, 세번이나 콜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얼마면 가시겠냐고들 물어봤는지 모르겠다. 지극히 슬픈 일들이 딱 그만큼이라는 얘기도 되리라. 파주에서 서울로 가는 택시 안에서 아베 야로의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를 읽다 이렇게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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