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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수도권 기득권’ 깰 생각은 있나? / 석진환

등록 2018-09-30 17:48수정 2018-10-01 14:59

석진환
사회1 에디터

추석과 설날, 한해에 딱 두번 만나 회포를 푸는 고향 친구들은 술잔을 채우자마자 서울 집값 이야기부터 꺼냈다. ‘2~3년 전 얼마 하던 게 몇억이 올랐다더라’ 따위의 요즘 어느 자리에서나 오가는 통과의례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즐거운 명절에 우울한 이야기를 피하고 싶었지만, 너무나 진지한 친구들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술자리는 예상대로 각자 다른 이유에서 밀려드는 허탈감과 박탈감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서울 사는 나는 집이 없고, 5~6년 전 친구들이 산 집은 같은 평수 서울 집의 10분의 1 가격도 안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친구들이 느끼는 허탈감의 분명한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 있다. 부동자금이 넘쳐나고 수요는 끝도 없으니 서울 집값이 언제든 터질 뇌관이었다는 변명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 정부가 늦게나마 내놓은 조세·금융정책과 수도권 30만가구 공급대책 등으로 시간을 좀 번 듯하지만, 그 정도는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말이 딱 맞다. 집값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나 같은 무주택자들은 청약통장을 만지작거리며 여기저기 기웃거릴 테지만, 이미 오른 집값이 제자리로 돌아올 리도 없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5개월이 되도록 수도권 집중 해소와 지역 균형발전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만일 현 정부가 참여정부 때처럼 출범 직후부터 행정수도 이전과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구상하고 수도권 중심의 기득권 세력과 적극적으로 맞붙어 깨지기라도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서울 집값이 치솟았더라도 정부 정책이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응원했을 것이다. 지방에 사는 내 친구들도 정부의 균형발전 노력만큼은 평가해줘야 한다며 소외감을 토로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국가 균형발전은 민주주의 역사이자 민주당의 역사” “노무현 정부보다 더 강력한 국가 균형발전 정책”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분권”을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껏 정부는 부동산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인 수도권 집중을 해결하려는 어떤 시도나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큰 그림도 보이지 않고, 키를 잡고 있는 인물도 없다. 당장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현 정부만이 할 수 있는, 현 정부이니까 꼭 해야 하는 ‘씨뿌리기’조차 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에 가깝다.

더 비관적인 건 정부가 앞으로도 균형발전을 의욕적으로 추진할 것 같지도 않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지난 7월 말 자치분권비서관과 균형발전비서관을 자치발전비서관으로 통합한 게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균형발전비서관은 이미 지난해 말 해당 비서관이 출마를 위해 자리를 비운 뒤 공석이었다. 대통령이 챙기지 않으니, 누가 감히 수도권 기득권에 맞서려고 총대를 메겠는가.

딱 한 사람,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한달 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강조하며 수도권 공공기관 122곳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기 위해 당정 협의를 하겠다고 나섰다.

공공기관 추가 이전은 ‘문재인 정부 균형발전’의 첫걸음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어찌 됐든 저항이 많은 상징적인 일이니 지켜볼 일이다. 당 대표의 강력한 의지가 있더라도, 국회와 정부에 스며 있는 ‘수도권 기득권’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 세종시가 지역구인 이 대표 외엔 민주당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모두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균형발전의 핵심 정부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후보자)도 모두 수도권에 지역구가 있다. 최고위원들도 김해영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도권 의원이다. 비상한 각오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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