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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왜냐면] 끝나지 않은 노회찬의 꿈 / 김수정

등록 2018-12-05 18:43수정 2018-12-06 15:17

김수정
변호사·노회찬 재단 준비위원회 준비위원

노회찬은 2018년 7월27일 영원한 안식을 취하였다. 그가 떠난 다음날 새벽, 한여름 폭염 속에 우주 최대의 쇼라는 개기월식과 태양과 지구와, 달 그리고 화성이 일직선에 위치하여 달이 빨갛게 물드는 일명 블러드 문이 일어났다. 옛날 같으면 기괴한 천재지변으로 인간의 잘못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여겨졌을 법한 자연현상이다. 그를 보내고 잠을 이루지 못하던 내게 블러드 문은 우주 최대의 쇼가 아니라 실은 예로부터 이변으로 죽음의 원통함을 알리는 우주의 애도인양 느껴졌다. 그의 죽음의 원통함이 자연의 흐름마저 바꾼 것이다.

나는 1999년 사법연수생 시절 우연히 그를 알게 되었고, 이런저런 중요한 일을 맡겨주어 변호사로서 자랑할 만한 일들을 수행할 수 있었다. 우선, 그의 부탁으로 하게 된 1인 1표제 위헌소송이 있다. 지금은 당연하게 1인 2표를 가지고, 한표는 지역구 의원 선출에, 한표는 정당에 투표하고 있다. 하지만 2001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전까지는 1인 1표를 가지고 지역구 후보에게 투표하면 각 당의 지역구 당선자 비율에 따라 비례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국민의 정당 지지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구조였다. 1인 1표제 위헌소송은 순전히 그의 혜안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었다. 모두가 되겠느냐며 헛수고일 거라 할 때 뚝심으로 밀어붙였고, 나조차 큰 기대 없이 위헌소송을 진행하였다가 위헌 결정을 받은 변호사라는 영광을 누렸다.

1인 1표제 위헌 결정은 2004년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지금까지도 소수 정당들이 그나마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는 작은 통로가 되고 있다. 그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고 소수 정당들이 의원을 배출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게 위해 마지막까지 전력을 다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그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정당 득표율을 토대로 총 의석수를 배분하는 것이다. 2016년 정의당은 총선에서 7.23%의 정당 득표를 했다. 만일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면, 21석을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의당은 6석밖에 얻지 못했다. 나머지 의석은 거대 양당이 부당하게 차지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제도의 도입은 국민의 의사를 왜곡하고 거대 양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짜인 정치지형을 해체하고 다양한 세력이 국회에 진출하게 할 수 있는 절박한 것이지만, 거대 양당에는 부당하게 차지한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난색을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노회찬은 유서에서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당이 당당히 나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으로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그가 죽음을 선택하기 직전까지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전력을 다한 이유일 것이다.

그가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과 삼성그룹 이학수 회장이 1997년 대선 당시 특정 후보에게 자금 제공을 공모하고 검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거나 제공할 것을 모의하는 내용이 녹음된 안기부 녹취록 중 검사 명단을 공개한 일로 기소됐을 때(일명 삼성 엑스파일 사건), 나는 그를 변론하는 주심변호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도청된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것이었는데, 변호인단은 국회의원이라면 오히려 재벌과 언론, 검찰의 비위행위가 담긴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책무라고 주장하며 맞섰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무죄 선고를 받았다. 사실 무죄 판결을 변호인의 공으로 치사하기에 부끄러운 면이 있다. 삼성 엑스파일 내용과 언급된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행위가 정당성을 갖고 있던데다 법정에서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최고의 변론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후 대법원의 어이없는 파기환송과 재상고로 유죄가 확정되어 결국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그는 언제나 굳건했다. 그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괴로웠지만 언제나 굳건하였던 그가 있어 괴로움은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쳐 버릴 수 있었다. 굳건하기만 했던 그가 이토록 아프게 스러질 것을 어느 누가 알았을까.

그에게 내 아이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졸랐었다. 1인 1표제 위헌소송에서 승소한 성공보수라고 협박했다. 그는 젊은 날 노동운동으로 긴수배와 감옥살이를 하느라 자식을 낳을 기회를 놓쳤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나는 잔인하게 내 자식의 이름을 지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아래와 같이 적은 의미와 함께 딸아이의 이름을 보내왔다. 그를 보낸 후 다시 꺼내어보았다. 그런데 이를 되뇌어 볼수록 확실해졌다. 그는 실은 자신이 살고 싶고 되고 싶었던 것을 적어 준 것이었다. 자유롭게 살고 팠고, 한줄기 세상의 빛이고 싶었고, 민중의 약이 되고 힘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욕심 많던 사나이 노회찬은 결국 뜻을 이루고 너무나 외롭고 고독하게 사라져간 것이다.

‘섬진강 가로질러 송화강 너머까지
산과 들에 절로 나서 홀로자라는 들풀 지초(芝草)처럼
자유로이 살거라

초여름밤 어둠속에서
조용히 흰꽃 피우는 야생화 지초(芝草)처럼
한줄기 세상의 빛이 되거라

그리하여 불과 물과 어둠까지 다스리는 자줏빛
굵은 뿌리 자근(紫根)처럼
민중의 약이 되고 힘이 되거라’.

노회찬 재단은, 굳건하고 비범한 그의 옆에서 비바람을 피하고 혹은 그를 지지하는 것으로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소극적으로 가담했던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하여 그가 마지막으로 마련한 자리이다. 6411번 버스의 투명인간들이 사람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노회찬, 나는 여전히 소시민다운 소극적인 가담으로 그의 뜻에 함께할 것이다. 그를 기억하는 모두가, 그의 뜻을 기리는 모두가, 노회찬 재단에서 재회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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