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학교 교수·새로운 사회운동 지지자 “동아시아의 반란자들이여, 모이자! 전시, 상영, 라이브, 수상한 이벤트 등 이상하고 엉터리인 코너를 맘껏 개설하자! 국경을 넘어 반란자들이 활개치는 서울 대(大)패닉을 만들어보자!!” 위 문장은 2017년 가을 ‘노 리밋 서울자치구’(No Limit Seoul Autonomous Zone)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서울에서 개최된 어떤 회합의 취지문 일부다. 이 글의 독자들에게조차 회합 이름이 생경하다면, 이들이 의도했던 ‘대패닉’이 의미심장한 수준의 파급력을 발휘한 것 같지는 않다. ‘이것저것 규탄대회’를 필두로 서울을 ‘하루에 한 지역씩 점령한다’는 호기로운 계획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난 것 같다. 이들은 누구일까. 한편으로는 ‘반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니 ‘운동권’으로 짐작하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엉터리’ ‘수상한’ 등 기성 운동권과는 다른 수사를 사용해서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유동적이고, 무형적이고, 비조직적이고, 불가측해서 단체, 조직, 집단 등의 규정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누구인지,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데 능숙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다. 위 회합을 개최할 때 서울에 마련된 ‘사무국’마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얼마 전 그 주축 성원들은 ‘서울 오랑캐즈’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 달라는 말을 전했다. 그러더니 ‘노 리밋 2018 자카르타·발리’(No Limit 2018 Jakarta & Bali)라는 회합에 참석한다고 훌쩍 출국했다. 그곳에서 자신들과 뜻과 생각을 나누는 아시아의 반란자들과 난장을 만드는 일을 계속할 모양이다. 주위에서 인정하지 않는 일이 당사자에게 무의미하지 않다면, 이들에게 ‘한 줌의 가망 없는 주변인들’이라는 시선을 보내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이들의 행동에 대해 ‘사회운동의 새로운 형세’라고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끼리끼리 어울려서 함께 있는 것’을 비판할 이유도 전혀 없다. 이들의 새로운 방식의 ‘운동’이 일본에서 연원한 것에 대해서도 균형있게 판단할 일이지 선입견으로 재단할 필요는 없다. 최근 이들의 ‘돌발 행동’에 대한 또 하나의 뉴스가 전달되고 있다. 자카르타에서 발리로 이동하는 중인 12월10일에 한국인 참가자들, 즉 오랑캐들은 인도네시아 제2도시인 수라바야를 찾는다고 한다. 이유는 그곳에 있는 콜트콜텍 공장을 항의방문하는 ‘번외 행사’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저항음악가 혹은 ‘민중 엔터테이너’ 한받(예명 야마가타 트윅스터)이 이 항의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일정을 마친 뒤인 12월14일부터 16일까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공연을 서울 여기저기서 수행한다고 한다. 콜트콜텍 투쟁에 대해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2007년에 시작되어 이미 4300일(!)이 넘었다는 시간의 흐름만 확인해본다. 오랑캐 한 명이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 나에게 “현준샘, 저희가 또 사고를 쳤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렇게 ‘사고를 치는’ 능력이야말로 그들의 ‘순수성’ 아닐까. 콜트콜텍 공장이 수라바야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저 학술대회만 참석하고 돌아온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칠 수 없는 사고 말이다. ‘오랑캐의 힘’, 달리 말해 제도화되고 표상화되지 않는 직접적 행동이 조금만 더 넓은 파급력을 갖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들의 투쟁의 목적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의 해석은 ‘더 나은 세상 만들기’보다는 ‘더 나빠지는 세상에서 살아남기’다. 바뀌지 않는 세상에서 그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그리고 어떤 해석이나 평가보다 중요한 것은 개입과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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