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전, 서울 목동 스타플렉스 본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박래군 인권단체 사람 소장, 박승렬 NCCK인권센터 소장, 나승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송경동 시인이 무기한 연대 단식에 돌입했다. ‘스타플렉스(파인텍) 고공농성 공동행동’ 제공 사진.
주제에 안 맞게 사회운동 배우겠다고 쫓아다니던 내내 속칭 ‘활동가’ ‘선수’들이라는 사람이 쓰는 말 중에 싫어했던 것 하나가 ‘밥숟가락 얹는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 말에는 처절하고 절박하고 가슴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운동 과정을 어떤 정량과 주워 먹어야 할 성과로 재는 듯한 사고가 배어 있는 듯해 싫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와 조건에 맞게 참여해 힘 모아가는 사회연대운동 과정을 대상화하고 왜곡하는 것 아닌가 우려도 들었습니다. 이건 내 사업, 우리 사업이라는 은연 중의 패권주의가 내재된 무의식적 표현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투쟁 과정에 생겨난 분노나 좌절, 한계, 과제, 반성을 자기의 것으로 가져가지 않고, 자칭 ‘선수’들이 조그만 과실이나 탐하는 건 아닌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공동체의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사회운동은 ‘꽃도 무덤도 십자가도 없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야 하는 거라고 단순무식하게 믿었던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제가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과정에 ‘밥숟가락 하나 얹는 일’을 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스타플렉스(파인텍) 김세권 사장에 맞서 목동 서울에너지공사 75m 굴뚝 위에서 18일로 402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홍기탁, 박준호씨의 투쟁에 밥숟가락 하나 얹은 일입니다. 밥 숟가락 하나 얹는 일이 ‘무기한 연대단식’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결의하고 나니 별 생각이 다 듭니다. 살고 싶어 언젠가 어떤 이가 건네 준 비타민 한 알을 남겨두었는데 어디 갔지, 찾고 있는 한심한 나를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부실한 몸으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그들의 참혹하고 험난한 투쟁에 누가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지난 12월6일부터 4박5일 동안 청와대에서 스타플렉스 본사가 있는 목동까지 오체투지로 말없이 기어가며 한 걸음씩 각오하게 되었습니다. 400여일이라는 극단의 시간을 멈추게 하려면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이젠 비수가 되고 칼끝이 되어 저 비정한 자본가 김세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작년 이맘때 ‘408+49일’ 연대의 날을 제안하고 난 뒤 제대로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단 하루도 굴뚝을 잊을 수 없던 긴 슬픔의 시간과도 이제 그만 작별해야 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2016년과 2017년 겨울을 꼬박 그들과 박근혜 퇴진 광화문 농성촌에서 함께 했던 눈물겨운 우정의 시간들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숟가락 하나 얹는 일이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기도 합니다. 한분 한분이 소중한 인권의 보루에 다름 아닌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님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나승구 신부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소장이신 박승렬 목사님이 내준 귀한 길 따라갑니다. 오는 12월24일이 408일입니다. 2015년에 이어 또 한번의 야만과 폭력의 408일을 우리 사회 전체가 맞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결심들입니다. 우리의 도드라질 갈비뼈 하나하나가 홍기탁, 박준호 두 노동자가 조심스레 밟게 내려오는 계단 한 칸씩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모든 적폐청산의 염원이 형해화되고, 촛불항쟁이 희화화되는 현실에 대한 항의의 마음도 있습니다. 기존 수구 보수 정치권과 관료집단, 재벌들의 유대와 동맹은 건재합니다. 그사이 철거민이 다시 한강에 투신을 하고,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몸이 이윤의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두 동강이 납니다. 최저임금은 산입범위 확대로 다시 빼앗아가고, 노동시간은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로 다시 장시간 근무로 돌아갈 판입니다. 도대체 촛불정부에서 어떤 노동시민인권이, 민주주의가 확장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4·19 혁명 당시 김수영이 쓴 <육법전서와 혁명>을 빌리자면, ‘항간의 금값’ 부동산값만 천정부지로 오르고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우리들뿐입니다. 각설하고, 누구든 이 끝장투쟁에 밥 숟가락 하나 얹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올해가 가기 전 홍기탁, 박준호 두 노동자가 이 평지로 내려올 수 있게 함께 힘 모아 가길 소망하며 우리는 슬픔의 반복을, 야만의 지속을, 곡기를 끊습니다.
송경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