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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풀먼 파업

등록 2019-01-03 18:26수정 2019-01-15 14:10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893년 미국에는 심각한 불황이 닥쳐 경제의 모든 부문이 큰 타격을 받았다. 그 심각함이 1896년 대통령 선거 이후 미국 정치 지형도의 변화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직접적인 갈등은 풀먼 파업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풀먼 열차 제조회사에서는 불황에 따른 손실을 임금 삭감으로 만회하려 했다. 그들은 임금을 28% 삭감하면서 노동자들 집단 거주지의 집세나 공공요금은 보전해주지 않았다. 결국 노동자들은 파업을 결행했다.

풀먼 노동자들의 파업 소식에 미국 철도 노조 회장인 유진 데브스는 거대한 풀먼 회사를 상대하기에는 노동자들이 자금도 부족하고 미숙하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최초에 이 파업은 노조의 동의를 얻지 않고 일어난 이른바 “살쾡이 파업”이었다. 이후 노조원들은 풀먼 열차에 대한 보이콧을 만장일치로 받아들였다. 노동자 10만명 이상이 동맹파업을 일으키면서 풀먼 파업은 전국적인 노사분규로 확대되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철도 관리자 협회는 풀먼 열차가 운행되지 않는 한 우편열차를 포함한 모든 열차를 운행하지 않겠다고 통보하고 시카고 일대 교통을 마비시켰다. 또한 연일 파업에 대한 악의적인 뉴스를 보도하게 만들어 여론이 회사 쪽에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조작했다. 결국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파업을 진압하려 연방군을 투입했다. 언론에서 ‘데브스의 난’이라고 묘사한 풀먼 파업은 30여명이 죽고 700여명이 체포되어 실패로 끝났다. 데브스는 법원의 파업 금지 명령을 거부했고, 우편열차 운행 방해를 음모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우드스톡 감옥에 수감되었다.

데브스는 풀먼 파업의 실패를 통해 자본가의 힘이 도처에 존재하며, 정부는 자본가 편에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는 노조가 노동자의 권리 보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제도와 법률 체계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함을 깨달으며, 감옥에서 사회주의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편집자주: 이 칼럼에 사용된 일부 자료는 전다솜의 최신 석사논문을 이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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