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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김수영 전집의 표기 문제 / 이명원

등록 2019-01-11 18:10수정 2019-01-12 14:07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새로 출간된 <김수영 전집>을 읽었다. 이 전집을 읽으면서 몇가지 생각을 해보았는데, 이후에 출간될 시인·작가 전집과 관련하여 시사점이 있을 듯해, 몇가지 사안을 환기해보고자 한다.

이 전집의 특징은 첫째, 이전 판본(2003)의 출간 이후 새롭게 발굴된 시와 산문들, 미완성 시 초고 등이 총망라되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여기에는 편자인 이영준 교수뿐만 아니라, 그간 김수영 문학을 검토해온 여러 연구자의 자료 발굴과 원본 확정 등 서지학적 검토를 통한 공동의 협력이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김수영 문학에 대한 완결되고 총체적인 연구가 비로소 가능해졌다.

둘째, 이전 판본에는 본문 매 작품의 끝마다 탈고되거나 발표된 해를 명기했는데, 이번 판본은 본문에서는 해당 정보를 빼고, 전집 끝의 ‘작품연보’에 탈고일과 발표 지면을 연대기순으로 밝히는 것으로 변경했다. 김수영을 연구할 때, 많은 경우 작품의 탈고 및 발표 시기와 작품 세계를 연관시키면서 의미를 분석하는 경향이 많았다. 특히 ‘일기초’와 같은 육성이 깃든 자료는 시작 노트를 겸하는 것이어서 큰 의미를 띠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 보면, ‘시 자체’를 독립적이고 완결된 것으로 읽는 태도를 저해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편집 태도 역시 존중할 만한 것으로 느껴졌다.

셋째, 표기 문제다. “이 전집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모두 현행 맞춤법 규정에 따라 고쳐서 표기하였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의 경우 현행 규정으로 표기하는 것이 시의 의미와 효과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너…… 세찬 에네르기’와 같은 시는 표제의 어감을 살리기 위해 ‘에너지’의 일본어식 발음을 그대로 남겼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예가 그렇듯, 현행 맞춤법 규정에는 ‘난쟁이’가 표준어이지만, 여전히 ‘난장이’로 쓰는 이유는 그 표제의 고유성과 효과 때문이다.

넷째, 한자 표기의 문제다. 이 전집은 “원고에 한자로 표기된 글자는 한글로 바꾸었고 필요한 경우에만 한자를 표기하였다.” 사실 이 부분이 새로 출간된 판본의 가장 큰 특징이다. 완전한 한글전용은 아니지만, 국한혼용(國漢混用)체를 사실상 순한글체에 가깝게 표기했다. 이것은 동시대 독자들의 언어 상황과 환경을 크게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인쇄출판 문화에서 국한혼용체는 사라진 지 오래이며,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는 식의 국주한종(國主漢從)체 역시 제한적으로만 쓰이는 언어 현실을 반영한 것일 터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오장환 전집>(2018년 12월) 역시 이런 현대어 표기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보면, 연구자들조차 암묵적으로 이러한 표기 원칙에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남는다. 나 자신이 한자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으되, 새로운 판본으로 김수영의 순한글 표기 시를 읽으면서, 이전 국한혼용체의 김수영 시와는 다른 감각을 느낀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가령 ‘공자의 생활난’에서의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事物과 事物의 生理와/ 事物의 數量과 限度와/ 事物의 愚昧와 事物의 明析性을”과 같은 부분을 순한글체로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이라고 표기하면, 시의 감각과 효과는 분명 다르게 나타난다. 미묘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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