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학교 교수·대중음악평론가 빅토르: 프레디 형, 어서 와. 많이 아팠을 텐데 이젠 편히 쉬어. 여기는 일년 내내 여름이야. 프레디: 빅토르, 너도 교통사고로 끔찍한 시간을 보냈지?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수만명을 모아놓고 공연한 직후 갑작스럽게 사고가 나서 나도 많이 놀랐어. 빅토르: 형이 나에 대해 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야! 사실 경기장 메우는 것은 형 전공이잖아. 퀸이 런던 웸블리 경기장을 꽉 채우고 공연했을 때, 나는 작고 후줄근한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서 100여명 앉혀 놓고 공연하고 있었어. 프레디: 런던에서 레닌그라드까지 거리는 3000㎞밖에 안 되지만, 그때는 참 멀어 보였지. 1986년 퀸의 마지막 투어도 부다페스트까지밖에 못 갔어. 빅토르: 형이 러시아에서 공연을 못한 것은 참 안타까워. 퀸 음악은 1970년대 클래식 록에 속하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뉴웨이브 스타일도 있잖아? 우리 같은 변방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에게는 퀸의 무대는 너무 멋지고 화려했지. 우리는 그럴 돈이나 인력이 없었어. 프레디: 영국 밴드라는 자체가 갖는 유리한 점이 있는 게 사실이잖아. 음악 어법이 공통이라고 해도 록 문화가 갖는 파워는 나라마다 다른 게 사실이잖아. 그런데 키노의 음악은 나보다 젊은 영국 애들이 하던 고딕이나 뉴로맨틱스랑 상통하는 것 같더군. 빅토르: 사실은 내가 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야. 형이 이렇게 배려 깊은 생각을 한다는 게 놀라워! 혹시 형이 ‘영국인’이지만 이른바 ‘백인’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개인사나 가족사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돼? 프레디: 태어난 데는 아프리카 잔지바르인데, 당시는 영국령이었고 지금은 탄자니아 일부야. 중고등학교는 인도에서 다녔어. 그런데 나의 먼 조상은 이란에서 인도로 이주한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래. (남)아시아, (동)아프리카, (서)유럽을 오간 셈이지. 그나저나 빅토르 너는? 빅토르: 형만큼이나 복잡해. 먼 조상은 (동)아시아에 살았는데 할아버지 때 극동 러시아로 이주한 뒤 다시 중앙아시아로 왔어. 그 뒤 아버지는 레닌그라드에 와서 러시아인 엄마를 만났고. 나는 ‘소련 현대사’ 그 자체야! 프레디: 그렇다면 나는 ‘영연방의 현대사’네! 그러고 보니 너나 나나 모두 ‘아시안’이라고 불렸다는 공통점이 있네. 한번은 병원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는데, 내 정체성의 범주를 ‘아시안’으로 쓸 수밖에 없더라고. 빅토르: 소련에서는 서류에 ‘민족’을 선택해야 했는데, 나는 이른바 ‘혼혈’이라 ‘로시야’를 써 냈어. 하지만 아버지 신분증에는 ‘카레야’로 적혀 있더군. 그나저나 내가 프레디 형의 노래를 들을 때 ‘영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백인’이 부르는 노래와는 다르다고 느꼈어. 그걸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는 참 힘들어. 프레디: 네 음악도 마찬가지! 그렇지만 국적, 민족, 인종 같은 범주로 사람의 정체성을 구분하는 것은 우리가 떠나온 세상의 일이니 여기서는 그런 것 없었으면 좋겠어. 이른바 성 정체성이란 것도 그런 말 자체가 없었으면 좋겠어. 구분하는 순간 서열을 만드는 게 인간이 하는 짓이잖아. 빅토르: 맞아, 맞아. 여기 있으면 예언력이 생기는데 프레디 형을 다룬 영화가 27년 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대박을 친대. 나를 다룬 영화도 비슷할 때 나오는데 그건 그닥….(1부 끝) 주: 이 대담은 100% 허구임을 밝힙니다. 제 페이스북 포스팅에 ‘좋아요’가 250회 이상이면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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