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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슈논쟁] 20대 청년의 분노는 철없는 질투가 아니다 / 김현동

등록 2019-01-21 09:25수정 2019-01-22 09:37

20대 남성과 문재인 정부
김현동
바른미래당 청년대변인

나는 논란이 되었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발언에 ‘20대 청년의 아우성은 철없는 질투가 아니다’라고 비판하는 논평으로 대변인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래서인지 최근 한달 동안 끊임없이 20대의 지지율 하락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 대답은 ‘나의 분노’가 아닌 ‘우리의 분노’의 이유가 되어야 했기에 상당한 고민을 요했다.

우리 20대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정체성과 생각을 공유하는 세대이다. 과거 대한민국에는 그 세대들이 공유하는 시대정신이 또렷이 있었다. ‘나의 가난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라는 새마을 정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민주화 정신, ‘나를 희생해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생각을 기반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체제 극복을 이루어낸 금모으기 운동 정신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저출산 위기, 다가온 통일 등 여러가지 시대적 과제가 산적한 오늘날, 20대들은 뚜렷한 시대정신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유교 사회주의라는 표현으로도 설명이 가능할 정도의,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이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었던 과거의 집단주의는 이제 해체 수순에 돌입하고 있다. 20대의 대부분이, 그것이 설사 남북 평화와 화해의 단초가 되는 길이라 할지라도, 열심히 노력한 선수를 엔트리에서 제외하는 것에 분노했던 것은 이와 똑같은 맥락이다. 남북 단일팀에서 60대 이상 강경보수의 분노가 ‘북’이라는 글자에 의한 것이었다면, 20대의 분노는 ‘단일팀’이라는 글자에 의한 것이었다.

이처럼 오늘날의 20대는 만연해진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사고할 뿐 자신들을 어떤 세대로 규정하는 것조차 어려운 사회를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것을 목표로 두느냐의 문제와 별개로 무엇에 분노하는지는 명확하다. 그것은 바로 ‘공정함의 상실’이다.

잠시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바른미래당 주최 바른토론배틀에 참가해 준우승을 해서 청년대변인 임명을 받았는데, 처음 임명을 받고 돌아왔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대회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친구들은 좋은 성적을 거둔 청년에게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는 말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약속대로 대변인 임명을 받자 그것만으로도 큰 메시지가 된 것 같았다. 어쩌면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는, 애초 공지했던 약속을 그대로 지킨 것 하나만으로도 지지를 보내는 우리 20대들의 정서, 그것은 위에 언급한 그대로 ‘공정함에 대한 갈망’이다.

열심히 훈련해 대표팀에 합류한 선수를 단일팀을 만들기 위해 내치는 것도, 기본권의 침해를 불러일으키지만 모두가 감내해야만 했던 군 생활이 누군가는 종교를 이유로 거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대통령의 팬카페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공기업 이사가 되는 것도 모두가 공정성의 측면에서 우리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어째서 남성과 여성의 분노 정도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결국 남녀가 생각하는 공정함의 차이가 그 이유일 것이다.

오늘날 ‘성평등이 필요하다’라는 명제에 대해, 남녀는 서로 다른 시각을 바탕으로 보고 있다. 최근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매개로 여성이라는 성별 자체를 내집단화하고 있는데, 가령 성폭행 사건이 있다고 했을 때 이것은 남성 권력에 의해 발생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이해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개인주의화되어 있는 남성들에게는 어불성설에 가깝다. 20대 남성에게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는 내가 비난할 대상일 뿐, 책임과 잘못을 분담해야 할 동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에서, 20대 남성에게 지난 남성중심주의 사회의 책임을 분담하라는 요구는 불공정함 그 자체로 받아들여진다. 쉽게 말해 ‘82년생 김지영’이 살던 세상의 부조리는 ‘92년생 김지훈’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함의 확립이다. 이들은 몰카(불법 촬영) 문제, 경력단절 문제 등 여전히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하되 20대 남성이 내몰린 사각지대에 대해서도 사회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군대의 가혹함을 이야기하면 임신으로 인한 경력단절로 받아치고, 집 가는 길이 무섭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데이트 비용은 누가 내느냐고 받아치는 식의 논쟁은 남녀 간의 불만을 양극단으로 보내고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는 행위에 그칠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와 문재인 정부의 탄생을 보며 공정한 사회로의 이행을 기대했던 20대는 변하지 않는 세상이 던진 새로운 문제에 신음하고 있다. 모로 가도 공정하기만 하면 된다는 이들의 아우성은, 바꾸어 말하면 우리 사회에 너무도 많은 불공정이 만연해 있음을 의미한다. 촛불을 들었던 우리의 외침은 단순히 대통령 한명을 바꾸기 위함에 있지 않았기에 여전히 분노하고 소리치고 있다. 정치가 이 불만을 철없는 질투로 치부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떠오를지도 모르는 ‘공정함에 대한 갈망’을 들어주겠다는 관점을 택할 때 사회에 만연한 정치혐오가 줄어들 것이라 믿는다. 아직은 갈 길이 먼, 그리고 바꿀 것이 많은 오늘의 대한민국이더라도.

이슈논쟁 / 20대 남성과 문재인 정부

<편집자 주> 20대 남성은 왜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나. 지난 연말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급락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낸 이슈다. 당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발표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율은 29.4%로 추락했고, 이는 20대 여성의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도와도 비교됐다. ‘20대 남성과 문재인 정부’라는 주제로, ‘386 출신’인 조형근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와 ‘20대 당사자’인 김현동 바른미래당 청년대변인의 글을 나란히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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