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소장 이번 설날에도 고향은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가라앉은 것은 아닐까 싶다. 웬만한 도시의 명절 대목인데도 거리는 한산했고 상권은 더 초라해졌다. 힘들게 대학에 진학한 조카도 기회만 있으면 수도권으로 생활 터전을 옮기겠다는 눈치다. 형편이 더 나쁜 지역들이 공항을 짓고 도로를 깔겠다는 심사를 차마 뭐라 그러지 못하겠다. 온 국민이 새로 말을 익히게 된 ‘예타’ 면제는 이렇게라도 ‘지역’을 살려야 한다는 중앙과 지방 정치가 작동한 결과다. 누가 감히 그 지역들의 균형 발전을 반대할 수 있을까? 비수도권 지역이 침체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는데. 절박함에 무엇을 가릴 것이며, 국가나 전체까지 고려할 여유 같은 것은 없다고 할 것이다. 이해하지만, 그래도 건설과 토목 중심의 지역 살리기에 찬성할 수 없다. 안이한 습관성 정책과 게으르고 무책임한 정치에 반대한다. 첫째 이유, 토건 사업으로 지역 쇠퇴를 늦추고 소멸을 막는다는 보장이 없다. 텅 비어 애물단지가 된 공항, 빨라진 교통 덕분에 가벼운 질병조차 서울로 수도권으로 몰리는 새로운 불균형, 한산한 고속도로 옆에 놓이는 왜 만들까 싶은 고속화 국도. 어느 것이라도 지역을 살렸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바란다. 둘째, 혹시 경제효과가 있어도 지역과 무관하거나 오히려 불평등을 키운다. 특히 주민의 눈과 생활로 경제성을 따지면, 짓는 과정과 그 이후 경제가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영 미심쩍다. 4대강 사업을 벌써 잊지는 못할 터, 기계화로 고용과 인건비조차 옛날 같지 않다고 하지 않는가. 세금에서 나온 그 막대한 비용과 효과는 최종적으로 누구 손에 배분되는지, 그 차별적 결과를 걱정한다. 셋째 이유는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을 살려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그곳에서 지금 시급한 생활의 요구, 앞으로 더 커질 절박한 삶의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모두 알고 짐작하는 그대로, 모든 이가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기반을 갖추는 일이 아닌가. 사회적 인프라인 주거, 의료, 돌봄, 교육이 더 중요하다. 대규모 하드웨어-시설에만 집착하는 지역 투자는 ‘나라 만들기’ 시기의 유산이다. 사회간접자본이라 하든 ‘에스오시’(SOC)라 부르든, 습관처럼 철도, 도로, 항구, 공항, 발전, 통신망으로만 가두는 것은 이미 너무 좁다. 말의 본래 의미인 ‘자본’의 취지를 살리면, 갈 길은 더 명료하다. 구조를 개혁하거나, 다른 분야 발전에 도움이 되거나, 또는 미래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삶의 기반인 주거, 의료, 돌봄, 교육 등에 투자하는 것이 이 시기 사회간접자본의 핵심 영역이라 생각한다. 그것도 과거 패러다임인 시설보다 소프트웨어인 사람, 시스템, 운영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항이 더 중요한가, 지역 사정에 맞는 돌봄 서비스 체계가 더 중요한가. 주민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면서 경제효과도 분명한, 공공주택, 국공립 유치원, 돌봄과 커뮤니티 케어, 공공병원과 요양시설을 사회간접자본이란 말이 아니면 무엇으로 부를까? 근본에서는 국가·지방 재정의 결정 원리와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 고민이다. 재정 운영을 ‘사람 중심’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더 깊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과제. 어떤 투자든 공공성과 공정성이 약하면, 일부가 결정권을 독과점하면, 발전은 역설적으로 차별과 격차를 더 키우는 ‘저발전’이 되고 만다. 국민과 주민이 국가와 지역의 정책 결정에 더 깊이 참여하는, 요컨대 민주주의 심화가 (유일한) 대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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