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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평등한 대안의 상상 / 조문영

등록 2019-02-13 18:39수정 2019-02-13 18:57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달 중국 현지조사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광저우에 들렀다. 한국과 중국에서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교량 구실을 하고 계신 김유익 선생님 소개로 인근 중산(中山)의 한 자연마을을 찾았다.

청년들이 설을 맞아 문기둥에 춘련(春聯)을 달고 대청소를 하느라 분주했다. 대안 생태학교로 널리 알려진 영국 슈마허 칼리지 출신의 중국 청년들이 설립한 ‘슈미학교’다. 생태사회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9주간의 합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에스엔에스(SNS)로 소문이 퍼져 전국에서 발걸음을 하고 있다. 길모퉁이를 돌자 넓은 농장이 시야를 틔웠다. 1983년생 하오관후이는 ‘옥토농경학교’를 열고, 베이징 근교와 이곳 농장에서 유기농 재배 기술과 농장 경영 기법을 전수하는 교육활동을 추진 중이다.

농장 귀퉁이 목조건물에선 몇몇 청년들이 점심을 준비했다. 건강식품 가공과 유통, 관광을 결합한 에코빌리지를 추진 중인 이 젊은이들 역시 외지에서 왔다. 신선한 현지 채소를 배불리 먹고, 들판 위 흔들의자에 멍 때리고 앉았다 요가 수업까지 받았다. 빈곤과 노동이 연구주제인지라 먼지와 불량식품, 무감각한 얼굴들에 익숙했던 나한테는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워낙에 크고 다양한 중국이다 보니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없을 리 없다. 직접 재배한 작물을 파머스마켓에 가져와 거래도 하고 수다도 떠는 청년들의 소소한 삶이, 아이폰을 장만하려고 장기를 팔았다는 얘기보다 미디어의 관심을 덜 자극했을 뿐이다. 유례없는 환경파괴가 먹고 숨 쉬는 기본적인 삶을 위협하면서 이대로 가다간 다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졌다. 국가가 ‘향촌진흥’과 ‘생태문명건설’을 장려하고, 시중에 유통되는 식품의 안전을 믿을 수 없는 중산층이 농장에 투자하고, 도시의 경쟁적 삶에 넌더리가 난 청년들이 농업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억압받는 정치활동 대신 생태를 중심으로 고민을 나누고 세상에 발언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생명지도가 펼쳐지고 있다.

도시의 고물가를 견디지 못해 농촌으로 유턴을 택한 농민공(農民工) 출신도 간혹 눈에 띄지만, 귀촌청년(返鄕靑年)의 삶은 대졸자들, 부양 부담이 적고 부모에게 ‘기본소득’을 받는 청년들에게 더 근접한 것 같다. 자기자본 없이는 굶어 죽기 십상이라고 한국의 귀농민들도 늘 얘기하지 않던가.

‘대안’의 위계는 여전히 불편하다. 경치 좋은 곳에 공동육아시설을 만들어 부모의 자가용으로 자녀를 픽업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들, 학생을 소시지로 가공하는 한국 교육제도에 절망해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보냈다는 분들에게 참 잘하셨다고 빈말을 늘어놓기가 싫다.

그럼에도 어떤 ‘대안’은 참 좋았다고 고백해야겠다. 중산을 떠나려는 찰나, 미세먼지가 걷히고 새털구름 가득한 파란 하늘이 시선을 붙잡았다. 하늘과 농장이 맞닿은 절경을 갓 결혼한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광저우에 오기 전 다녀온 폭스콘 여공의 농촌 혼례는 떠들썩하면서도 쓸쓸했다. 도시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겠다고 당당히 얘기해온 친구가 ‘집안’ 사람이 되는 것을 삶의 유일한 안전망으로 삼기까지 숱한 고단함을 봐왔기 때문일까. 중국이든 한국이든 빈곤가정의 청(소)년들이 공장과 알바, 거리와 집으로 사회의 반경을 줄이기 전에 일과 삶을 새롭게 결합할 전망을 보여줄 방도는 없을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명 정도만 허하고 다른 세계를 상상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에서 대안은 여전히 신분의 언어다. 그렇게 좋은 대안이 조금 더 평등의 혜안을 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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