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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광화문광장, 과정이 중요한 이유 / 배정한

등록 2019-02-15 18:18수정 2019-02-15 19:01

배정한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 공모’ 당선작이 발표되자 도시 공간 설계를 둘러싸고 이례적으로 여론이 들썩였다. 하지만 딱 열흘로 끝났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언론은 광장 재구조화의 당위성과 서울의 미래에 대한 심층 논의보다는 세종대왕과 충무공 동상 이전, 촛불 문양 바닥 포장, 정부서울청사 경계부 등 지엽적 문제를 표피적으로 다루는 데 급급했다. 이때다 싶어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이순신을 빼고 촛불을 넣은 좌파 광장”이라는 막가파식 논리의 극단을 내달렸다. 그리고 고요해졌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말초적 논란 덕분에 서울시의 계획은 일정대로 정주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동상, 안 옮기면 된다. 포장, 촛불은 오해고 바닥 조명일 뿐이다. 정부청사 경계 문제, 기술적으로 해결하면 된다. 형식적인 공청회가 두세차례 열릴 것이다. 한치의 상상력도 허용하지 않는 공모 지침을 지혜롭게 풀어낸 당선작(‘깊은 표면’)의 설계자는, 빠듯한 실시설계 기간 내내 총알을 대신 받아낼 것이다. 실제 공사에 들어가면 틀에 박힌 교통대란 논란으로 잠시 떠들썩할 것이다. 그리고 2년 뒤 봄이 오면, 우리는 정치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새롭지 않은 새 광장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일상성’과 ‘역사성’을 절묘하게 조합한 새 광장에는 미세먼지와 함께 또 다른 시간의 흔적이 쌓일 것이며, 머지않은 미래에 어느 시장은 비일상성과 현대성을 내걸고 다시 삽을 들 것이다.

광화문광장 이슈가 열흘 만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논란이 잠잠해진 것을 시민의 동의와 환영으로 해석한다면 오판이다. 청계천이나 서울역 고가와 달리 광화문광장에는 일상의 생업이나 이해가 얽힌 시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무관심한 것이다. 남의 공간이다. 광화문광장이 촛불혁명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이때는 나의 열망과 결합된 나의 공간이다. 광장의 핵심은 구조와 형태가 아니라 쓰임새인 것이다. 시민들은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로 가기 위해 목숨 걸고 대로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새 광장의 일상성에는 관심이 덜할 수밖에 없다. 전근대 조선 왕궁의 정문 앞 월대와 해태상을 복원하는 역사성에도 무덤덤하다. 광화문 일대의 재구조화는 “권력의 공간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라는 모호한 수사에는 갸우뚱할 뿐이다.

새 광화문광장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관심이다. 남의 밀실이 아닌 나의 광장이 될 때, 이 사업의 당위성으로 내건 일상성과 역사성도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시민의 관심과 참여라는 토대 위에 설 때,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는 미래 서울의 도시 구조를 혁신하고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장기 그랜드 플랜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당선작 발표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시장은 여섯가지 정책 방향을 밝혔다. 그중 한가지에서 희망의 끈을 발견한다. “‘새로운 광화문 프로젝트’는 결과는 물론 그 과정도 시민이 주인이 되는 협치 프로세스로 추진한다. 사회적 공론화와 각계 의견 수렴을 위해 작년 7월 출범한 집단지성 거버넌스 ‘광화문시민위원회’는 추후 기본 및 실시설계 등 공간계획 수립과 운영 방안 마련까지 조성 과정 전반에 주도적 역할을 해나가게 된다.” 시민의 토론과 숙의를 위한 긴 과정이 필요하다. 2021년 5월로 못박을 이유가 없다. 참여와 소통, 속도보다 방향, 결과보다 과정을 지향하는 박 시장의 평소 철학이 유감없이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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