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서울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실업급여 관련 교육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시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최근 재정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처음 예산을 편성했던 지난해 정부지출은 전년보다 7.1% 증가했다. 올해 정부지출은 예산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9.5% 늘었다. 경상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017년 5.4%, 2018년 3%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정부지출 증가 속도는 소득 증가 속도에 견줘 매우 빠른 편이다. 이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9월 5살까지의 아동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이 도입됐다. 올해 9월이 되면 그 대상은 6살까지로 확대된다. 노인 빈곤을 완화하기 위해 기초연금 지급액도 월 30만원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대책으로 일자리안정자금이 도입됐고 근로장려금도 4조원 규모로 확대됐다. 국민기초생활 보장 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될 예정이고 한국형 실업부조의 도입도 예고돼 있다.
그렇다면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나라 살림은 복잡하긴 하지만 가정의 살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통상의 가정은 지출을 늘려야 하면 일을 좀 더 많이 해 돈을 더 번다. 예컨대 자녀 학원비가 많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가사에 전념하던 이들도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재정지출을 위한 주된 재원은 조세와 국채다. 국가는 다양한 소득과 자산, 혹은 경제적 행위에 과세한다. 2018년 기준 국세로부터 300조원, 지방세로 79조원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조세수입보다 정부지출이 많은 경우,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민간으로부터 돈을 빌린다. 2018년에는 전년보다 20조원 정도 국가채무가 증가해 지디피 대비 비중이 38.2%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최근에는 화폐 발행을 통해 재정정책을 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아직 우리 정부는 그런 정책 수단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
지난달 한국경제학회의 토론회에서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 트릴레마’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이는 높은 복지수준, 낮은 조세부담, 낮은 국가채무라는 세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재정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조세부담을 올리든지, 아니면 국가채무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반대로 조세부담·국가채무 모두 늘리기 싫으면 복지국가로 가는 꿈은 접어야 한다. 여기에 ‘도깨비방망이’ 같은 묘수는 없다.
현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재정지출, 특히 복지지출의 증가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성인 2명이 결혼해 1명의 자녀가 태어나는 낮은 출산율, 5명의 노인 중 2명이 빈곤할 정도로 높은 노인빈곤율, 경제적 불평등의 지속적 확대 등 복지지출에 대한 수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세금을 좀 더 걷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로부터 빌려오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느 경우에 재정지출을 조세로 충당하고 어느 경우에는 국채로 조달해야 하는 것일까? 지출이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에는 조세로 충당하고, 상대적으로 단기인 경우에는 국채를 발행해 조달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를 들어, 경기침체에 대응하고자 추경을 하기 위한 재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국채 발행을 통해서 조달을 한다. 하지만 아동수당처럼 매년 지속적으로 필요한 지출에 대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증세를 통해 확보해 놓아야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해나갈 수 있다.
정치인들이 자주 거론하는 방법은 기존 지출을 구조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조조정 자체도 어렵지만 막상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액수는 생각보다 작다. 많은 부분이 조정하기 어려운 경직성 경비인 탓이다. 이전 정부처럼 비과세·감면을 줄여 조세수입을 확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비과세·감면 정비를 통해 조세지출을 많이 줄여놨기 때문에 더 줄일 여지가 크지 않다. 주로 서민과 중산층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들이 남아 있다. 오히려 이번 정부 들어 비과세·감면을 통한 조세지출은 큰 폭으로 늘었다. 2017년 39조원 규모였던 것이 올해는 47조4천억원으로 증가했다.
아무리 중요한 정책이라도 증가하는 재정지출에 대한 적절한 재원 대책 없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재정지출에 매칭이 되는 증세 없이는 지출을 계속하기 어렵지만 정작 증세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올린 것 외에는, 증권거래세를 내리는 등 외려 감세조처를 취하고 있다. 증세는 정부에도 정치인들에게도 매력이 없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는 사람이 먼저인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약속은 믿기 어렵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