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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혜진, 노동 더불어 숲] ‘다시는’이라는 말의 무게

등록 2019-05-02 17:28수정 2019-05-03 14:13

김혜진

노동 더불어 숲

4월28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고 김용균씨의 묘비석과 상징물 제막식이 있었다. 하얀 천을 걷고, 노란색 자전거를 탄 김용균씨의 조형물이 나타나자, 어머니는 “미안하다”를 반복하며 슬프게 울었다. 나는 늘 김용균씨 어머니의 당당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내 아들은 죽었지만 다시 누군가가 죽어서는 안 된다고, 그러니 시민들이 나서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호소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런데 김용균씨 어머니의 그 용기가 이토록 깊은 내면의 탄식과 고통 속에서 나오는 것이었음을 다시 깨닫는다.

김용균씨의 어머니와 산재로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 그리고 피해자들이 모임을 구성했다. 현장실습 도중 기계에 깔려 죽고, 건설현장에서 추락하고, 반도체를 만들다 백혈병으로 사망하고, 크레인이 무너져 죽임을 당하고, 노동자를 괴롭히는 일터에 저항하며 죽음을 택한 이들의 부모들과 메탄올에 실명하고 산재로 다치고, 직업병으로 미래를 잃은 이들이 만든 모임이다. 이 모임의 이름이 ‘다시는’이다. 죽음의 일터에 맞서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재발방지를 위해 싸웠던 분들이지만, 다른 이들이 이런 고통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다시는’이라는 이름에서 느낀다.

‘다시는’이 지금 하는 일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는 일이다. 그동안 안전장치를 하지 않아서 노동자와 시민들이 죽어도 ‘기업’은 처벌되지 않았고 말단 관리자들만 처벌받고 약간의 벌금을 물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되었지만 그 법으로는 기업과 책임자를 처벌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업에 부담을 물리고 권한이 있는 자를 처벌해서 기업들이 일터와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 힘을 쓰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도 유가족과 피해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간담회를 하고 국회에 찾아가고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 법의 제정을 위해 애쓰고 있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분투하는데, 정작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도록 해야 할 책임과 권한이 있는 정부는 이 말의 무게를 정말 무겁게 느끼고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김용균씨가 사망한 이후 지난해 12월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 머리발언을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등 해결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해 김용균씨 어머니가 나섰고 다른 산재사망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함께했다. 정부와 국회도 힘을 모았기에,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에는 부족하기는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정부는 4월22일 이 법안의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은 정부가 만드는 것이기에 생명안전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정부가 법안의 부족한 부분을 시행령에서 보충하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김용균씨가 일하던 업무는 도급 금지에 담기지 않았고 도급 승인 업무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도급 승인 업무는 오히려 대폭 축소되었다. 중대재해 발생 후의 작업중지 명령을 졸속으로 심의하여 해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법안에서는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보호 범위에 포함하도록 했으나 시행령에서는 9개 업종으로 좁혀버렸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어가는데, 생명안전에 대한 간절함으로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정부가 만든 시행령으로 훼손되고 있다.

‘다시는’이라는 말은 일터에서 억울하게 죽는 이들이 없게 하겠다는 약속이다. 다시 돌아올 가족을 잃었고 자신의 미래를 잃은 유가족과 피해자들은 그 약속의 무게를 무겁게 느끼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시민들도 약속을 잊지 않고 있다.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도록 싸우는 이들과 연대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킬 책임과 권한이 있는 정부는 그 말의 무게를 너무나 가볍게 여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을 재검토하고 생명안전 사회를 위한 산재 유가족과 피해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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