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간 둘째 딸이 첫 중간고사를 치렀다. 요즘 대입에선 정시보다 수시 정원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고1 때부터 한 치의 빈틈 없이 내신 관리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아이가 이런 중압감을 어떤 방식으로 견뎌내고 어떤 성적을 받을지, 아내는 스스로 수험생으로 빙의해 마음을 졸였다. 정작 나는 아이의 시험 결과보다는 시험이 끝난 날 무얼 하며 노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중간고사를 마친 날, 아이는 밤 열한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섰다. 잔뜩 상기된 뺨, 친구 세명과 잠실야구장에 다녀왔다고 한다. 엘지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긴장감 넘치는 빅 매치여서 모든 시험 스트레스가 날아갔다고 만족해하며, 아이는 다음 시험 후엔 아빠와 꼭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러 가고 싶다는 립 서비스까지 날렸다. 미소를 감추며 과묵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게 바로 조기교육의 참성과군. 아이는 유치원 다니던 무렵부터 주말마다 아빠 곁을 지키며 야구 중계를 함께 봤다. 참다못한 아내는, 조경학과 교수면 적어도 주말에 아이와 공원에 갈 의무가 있는 것 아니냐는 공세를 반복적으로 펼쳤다. 나는 야구장도 공원이라는 논리를 펴며 꿋꿋이 티브이 화면을 사수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펜웨이파크처럼 여러 메이저리그 야구장 이름에 붙은 ‘파크’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19세기의 급격한 도시화가 낳은 사회문제의 공간적 진통제로 발명된 근대 도시공원과, 노동 계층의 여가 욕구를 분출하는 장치로 고안된 야구장은 그 탄생 시기가 일치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념 면에서도 형제 관계다. 도시공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옴스테드가 계획한 버펄로 공원 시스템의 핵심 요소는 베이스볼 파크다. 훗날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긴 뉴욕 자이언츠의 홈구장은 센트럴파크 안에 있었고, 지금도 센트럴파크에는 아마추어용 야구장이 여섯개나 있다. 이렇듯 야구장은 공원의 한 전형이다. 물론 이런 식의 논리에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을 리 만무하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아이는 자연스럽게 야구팬으로 성장했다.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복잡한 야구 규칙을 스스로 깨쳤다. 태그아웃과 포스아웃 상황을 구별하고,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규칙을 이해했다. 수비 포지션 명칭을 통해 영어를 익히고 타율 계산식으로 수학 공부를 하는 아이를 보면 뿌듯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열심히 따라 부르는 어느 선수의 응원가 원곡이 베토벤 9번 교향곡이라고 알려주자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아빠의 영향으로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더 많은 롯데 팬이 된 걸 후회하는 것 같던 아이는, 어느 날 등번호 31이 커다랗게 박힌 손아섭의 유니폼을 사 입고 와 우승을 경험한 지 사반세기가 넘은 중년 사내를 기쁘게 하기도 했다. 시험을 마친 아이가 야구장에 갔다 온 다음 날, 지난번 칼럼 ‘공원의 리얼리티와 판타지’(4월13일치)를 흥미롭게 읽었다는 어느 대중잡지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이 화려한 봄의 절정에 꼭 가봐야 할 공원을 추천해 주세요. 이번 시즌에 새로 개장한 ‘창원엔씨(NC)파크’ 어떨까요? 아, 그런 파크 말고 진짜 파크요. 청명하던 그의 목소리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직감했다. 야구장 이름에 파크가 들어가서가 아니라 야구장이 바로 공원이라는 이야기를 더듬거리며 꺼냈지만,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야구장만큼 집단의 힘과 익명의 자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원은 없다, 야구장은 열광과 고뇌를 변주할 수 있는 공원이다, 뭐 이런 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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