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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경제가 어렵다는데… / 김회승

등록 2019-06-05 23:37수정 2019-06-06 09:55

김회승

정책경제 에디터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

지금도 언론계에서 널리 회자되는 기사의 제목이다. 2000년 9월 한 종합일간지 1면에 실렸는데, 언론학자들 사이에선 ‘사실을 왜곡해 지역감정을 조장한’ 대표적인 기사 사례로 종종 활용된다. 부산 지역 어음부도율이 다른 곳보다 낮은 건 “더 이상 부도날 기업이 없기 때문”이라는 식의 창조적 논리를 펼쳤으니, 그런 평판을 듣는 게 마땅한 기사다.

이 기사가 실린 시점은 김대중 정부가 반환점을 돌고 후반기를 맞던 때다. 외환위기로 집권에 실패한 충격을 딛고 재기를 노리던 야당이 ‘경제가 어렵다’ 프레임으로 공격을 개시한 시점이다. 아마도 ‘진보는 경제에 무능하다’는 프레임이 탄생한 시발점이 아닐까도 싶다.

이제 막 반환점에 다다른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출범한 지 1년도 안 돼 ‘경제 실정’ 비판이 시작됐다. 메뉴는 다양하다. 최저임금 인상은 밑반찬이고, 하루는 소득 통계로, 하루는 고용 지표로, 또 하루는 수출 통계로, 모든 책임을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뒤집어씌운다. 정권별로 경제 성적표를 매기는 건 무식한 짓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 ‘경제 어렵다’ 프레임이 이전 정부 때보다 훨씬 더 전방위적이며 정교하고 공세적으로 작동한다는 느낌이 든다.

어제 발표된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경상수지가 7년 만에 월별 적자를 냈다. 온라인 기사에는 ‘경제 버팀목 무너졌다’ 식의 기사들이 쏟아진다.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는 건 모두의 근심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교역량 감소, 미-중 분쟁 등의 여파로 주요국의 경제 지표와 전망치들은 대부분 내리막이다. 우리 역시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없고, 특히 전통 제조업 부진이 장기화하고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상황에서 뚜렷한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비상한 상황인 게다. 경제 주체 중 기업과 가계의 여력이 부족하니 정부가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그런데 보수 야당·언론은 정부가 경제 활력의 마중물이 되겠다며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펴는 데 대해서는 쌍수를 들고 반대한다. 저소득층 소득이 급감하고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정부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과 안전망을 늘리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비판한다. 고용 부진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공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니 근시안적 대책이라고 호통을 친다.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재정을 투입해 경제 부진을 타개하겠다고 하는데 나라 곳간을 거덜내는 짓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국가 재정을 확대하는 건 ‘나쁜 경제’라는 강력한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인데, 아무리 작은 정부와 시장 중심주의를 지지한다 해도 이 정도면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다.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 여력이 여의치 않을 때 국가 재정이 적극적인 구원투수로 나서 경제 활력을 제고하는 건 경제 교과서에 나오는 상식이다. 정부는 그냥 기업 규제나 풀고 재정은 손을 묶으라면, 국가의 책임을 사실상 방기하란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재정 건전성에 대해 보수적이다. ‘세금과 나랏빚은 적을수록 좋다’는 강력한 신화 같은 게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국들에 견줘 국가채무비율이 상당히 낮은 수준임에도 ‘40%가 적정선’이라는 논란이 제기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도 관료들도 왜 40%가 적정선인가에 대해서는 ‘심리적 지지선’ 운운하며 명확한 근거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보수 세력의 오랜 정치적 전략이기도 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국가채무비율을 다시 계산해보니 30%대 중반이라고 조정해 어제 발표했다. 대통령이 부총리에게 ‘40%를 넘기면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일부 언론은 “국가 재정을 거덜낼 발언”이라며 정색하고 비판했다. 예상보다 재정 건전성이 상당히 나아진 것인데, 이번엔 또 어떤 논리로 재정 확대 불가론을 제기할지 궁금하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20년 전 ‘추석이 없다’ 식의 아류 기사들이 자주 눈에 띈다. 조선·자동차 등 주력 산업이 부진한 부울경에선 적잖은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게다. ‘지옥’에 사는 이들이 구원을 받을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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