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이슈논쟁] 즐기는 문화가 있는 게임은 마약과 다르다 / 정의준

등록 2019-06-10 18:01수정 2019-06-10 20:30

상암 e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오버워치 APEX 시즌4 경기에서 프로게이머 스티치(이충희)가 집중하는 모습. 사진 e스포츠 인벤 제공
상암 e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오버워치 APEX 시즌4 경기에서 프로게이머 스티치(이충희)가 집중하는 모습. 사진 e스포츠 인벤 제공

정신의학 입장에서 시작해 보자. 미국정신의학협회(APA)는 2013년 정신질환진단통계편람(DSM-5)에서 인터넷게임 장애는 진단 기준과 증상이 확정되지 않아 질환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2019년에도 이 말은 유효한데, 협회에 의하면 정신의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찬반 의견이 분분하며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인터넷게임 이용’, 라나 파레크, 2018, psychiatry.org/patients-families/internet-gaming)

그간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과학적 근거는 아직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는 일단 게임사용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하고 나서 마련해 가면 된다고 한다. 기준과 근거도 제대로 없이 먼저 질병으로 등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과학적 절차인가?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견해는, 한국의 이름 없는 학자나 문화·산업계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2018년 옥스퍼드대, 존스홉킨스대 등의 정신건강 전문가와 사회과학자 36명은 “명확한 과학적 기준이 없고, 근거가 빈약하며, 질환으로 찬성하는 연구진조차 정확히 정의하지 못한다”고 했다. 게임장애의 근거가 되는 뇌기능 손상과 호르몬 변화, 뇌파 등의 연구에도 견해를 달리하는 논문이 상당하다. 이러한 과학적 이견도 질병 등재가 되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정신의학계의 질병화 찬성 쪽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중독캠프에서 보듯 피해를 입은 청소년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를 위해서도 질병으로서의 접근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하고 피해를 주고 있는 정신건강 문제가 많다. 운동중독, 쇼핑중독, 일중독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심리 문제에 관한 학술논문을 다루는 <사이크인포>(PsycINFO)에는 이로 인한 실질적 피해 사례와 위험성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중독들은 세계보건기구가 공식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았으며, 직접적 원인인 운동과 쇼핑 등은 마약과 같은 취급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게임 과몰입은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유발하는 것으로, 마약중독과 같은 질환으로 취급하려고 하는가.

건전하게 즐기는 마약문화나 약물문화가 존재하는가. 이런 것들을 오랫동안 사용하면 누구든 신체적 피해를 겪음은 물론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다. 그런데 누구든 게임을 오래 하면 마약중독 같은 심각한 증세를 보이는가. 게임은 마약과는 달리 이용자들의 일상적 문화로 존재한다. 게임문화를 토대로 프로게이머가 생기고 이(e)스포츠로 인정받고 국제대회와 방송이 있고 문화콘텐츠로 인정을 받는다. 어느 정신의학자는 국회 4대 중독법 논의에서 마약을 뺄지언정 그보다 중독성 높은 게임은 뺄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논리라면 게임보다 더 건전한 마약문화도 존재해야 한다.

질환의 결정은 의학계가 주도한다. 그렇다면 의학과 무관한 사회과학자나 문화계, 산업계의 의견은 소용이 없는가. 미국정신의학협회와 세계보건기구가 정신질환으로 인정했던 동성애는 어떠한가. 1990년 세계보건기구는 이를 목록에서 제외했는데, 이런 결정에는 사회적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질환의 결정은 과학적 근거와 더불어 사회적 인식과 합의에 엄연히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질병으로서의 과학적 근거는 물론 사회적 합의 없이 섣불리 정신질환으로 정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특히 마약·알코올·도박 등의 질병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겠지만, 게임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놀이문화를 마약과 동급으로 취급하면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질까.

비슷한 피해 사례가 보고되는 스마트폰이나 에스엔에스 등은 어떠한가. 드라마와 케이팝, 유튜브 등에 빠져 일상의 지장과 가정불화를 겪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다른 일에 대한 흥미 상실, 일상생활 부적응, 통제력 상실 등 세계보건기구의 진단기준을 확대하면 장애와 무관한 대상은 없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게임으로 피해를 겪는 사람들의 가장 극단적인 경우만 질환으로 인정한다고 하는데, 그런 극단적 사례는 어떤 기기나 콘텐츠에도 존재할 수 있어 스마트폰 장애나 유튜브 장애 등의 질환도 생기게 된다. 더구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충동조절장애나 공존질환 등으로 지금도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왜 과학적 근거나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으면서도 게임장애라는 정신질환을 만들어야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가.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등재되면 피해는 완전히 사라지는가. 정신의학계의 질병화 찬성 쪽에서는 게임장애의 원인이 게임인지, 환경인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피해의 근본문제를 방기하게 돼 당장 게임을 막는 효과는 있겠지만, 언제든 그와 유사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문화적 접근에서는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부모·교사·학업스트레스 등의 사회환경적 요인을 지목해 왔다. 이런 시각에서는 게임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으므로, 게임장애의 질병 등재로는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실제로 최근 게임과몰입센터 내원자의 90%가량이 공존질환을 보이고, 가족과 학교문제 회복을 통해 개선됐다는 보고도 있다. 근본문제가 게임이 아니라면, 게임장애의 질병화는 극히 단기적인 처방에 불과할 것이다. 이는 정신의학과 함께 다양한 사회·문화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의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이슈논쟁] 게임장애는 질병인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스위스에서 열린 총회에서 ‘게임사용장애’의 질병코드 등재를 승인함에 따라, 국내에서도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다. 이번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은 2022년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한 194개 회원국에 적용된다. 이에 반발한 게임업계 쪽은 지난달 29일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열어,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등 보건의학단체들은 10일 이번 결정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게임은 마약 등과 동일하게 취급되어선 안 된다는 쪽과 게임장애로 인한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쪽이 팽팽하게 맞서는 중이다.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 대해 각각 찬성과 반대 입장을 밝혀온, 두 교수의 글을 나란히 싣는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