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어떤 가수들이 쉬는 이유 / 미묘

등록 2019-06-14 17:22수정 2019-06-14 19:06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최근 화제가 된 두 음반이 있다. ‘김예림’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던 림 킴(Lim Kim)의 싱글 <살기>(Sal-Ki)와 이하이의 미니앨범 <24℃>다. 두 사람 모두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크게 주목받았고 유망한 기획사에 몸담았으며, 아주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쉬었다. 이하이는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소속이며,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나 드라마 사운드트랙 참여가 아닌 이하이의 명의로 나온 음반은 이번이 37개월 만에 처음이다. 림 킴의 경우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는데 이번이 2015년 이후 첫 활동이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만 3년 동안 와이지는 근 30장의 음반을 발매했지만 여성 아티스트는 이하이의 2집과 투애니원의 고별 싱글, 그리고 데뷔 후 2년이 다 되도록 다섯 곡밖에 내지 못한 블랙핑크가 전부였다. 여성 아티스트가 없어서는 아니다. 이수현은 2017년 7월 이후로, 씨엘은 2015년 이후로 아무 음반도 내지 않았다. 버닝썬 스캔들이 불거진 올해 블랙핑크, 안다, 이하이, 전소미 등 여성 아티스트 음반만 줄지어 발매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스틱도 촉망받는 여성 아티스트를 많이 영입했지만 발매에는 인색했다. 퓨어 킴은 2014년 이후 싱글을 세 장 냈을 뿐이며 박지윤은 2014년에 싱글 두 장을 내는 데 그쳤다. 장재인은 그나마 5년간 싱글 다섯 장과 미니앨범 한 장을 발매했다. 이 모두가 미스틱의 디지털싱글 연재 기획인 ‘리슨’ 시리즈를 포함한 숫자다.

창작이 시간 투자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각자에게 적합한 호흡이 있다. 연간 3, 4회 컴백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 케이팝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도 말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공교롭다. 장재인은 미스틱을 떠나자 4개월간 싱글 두 장을 내놨다. 박지윤 역시 2016년 독립하자마자 정규 앨범 두 장과 싱글 세 장을 발표했다. 양만 문제는 아니다. 미스틱은 매우 독특한 여성 아티스트를 영입해 매우 평이한 음반을 내놓는다는 평을 자주 받았다. 극단적인 예지만 공격적인 림 킴의 이번 싱글과 ‘앙큼한’ 레트로 팝이었던 2015년의 ‘알면 다쳐’는 현기증 나는 간극을 보인다. 개성 강한 싱어송라이터 퓨어 킴이 지난 6년간 자신이 작곡하고 부른 건 단 한 곡이다.

이 정도면 단지 우연이나 개개인의 사정만이 아니라는 의심을 품어볼 만하다. 기획사가 자사 여성 아티스트의 활동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추문에 휘말리지 않은 남성 아티스트에 집중하느라 여력이 없어서든, 대중음악사에서 누구나 겪는 소속사와 아티스트 간 의견 대립을 하필 이들만 극복할 수 없어서든 말이다. 비단 한두 기획사의 일만은 아니다. 다른 기획사들에서도 위에서 거론한 유형의 여성 아티스트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결국 이 산업이 귀여움이나 섹시함이 아닌 개성과 자기주장을 가진 여성 아티스트를 상상하지 못하는 탓일지 모른다. 재능과 가능성을 알아보고 아티스트를 영입했으나 걸맞은 옷을 준비하는 데 실패했다면 기획사는 제 할 일을 충실히 하지 않은 셈이다. 더구나 이미 개성이 뚜렷한 아티스트인 경우에는, 이들을 기획사가 원하는 뻔한 여성 이미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지원을 소홀히 한 것이라는 의심도 피할 수 없다.

그런 이들에게 음악시장 환경을 탓할 자격은 없다. 아티스트를 계약으로 묶어만 둠으로써 한창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할 아티스트의 생애에 큰 피해를 입힘과 동시에 시장이 경험할 개성의 다양성도 위축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집단의 상상력은 결국 다양한 것을 경험해야 풍부해진다. 좀더 많은 기획자가 여성 아티스트들의 개성과 자아를 존중하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