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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원래는 중국에 살았던 알라딘 / 노광우

등록 2019-06-28 18:06수정 2019-06-29 15:56

노광우
영화칼럼니스트

지금 상영되고 있는 월트디즈니사의 <알라딘>은 1992년에 나온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디지털 실사 영화로 다시 제작한 작품이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 특히 ‘알라딘’ 이야기는 서양 영화계가 만드는 영상 콘텐츠의 인기 소재다. 신분이 미천하고 가난한 남자 알라딘이 결국 공주와 결혼하게 되는 과정이 ‘신분 상승’이라는 모티브와 로맨스, 그리고 모험이 곁들여진 매력적인 이야기로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의 ‘알라딘’ 관련 영화들은 원작의 기본적인 이야기 틀은 유지하지만 각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인물과 공간을 바꿔왔다. 지금의 디즈니판은 미국의 사회·문화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작품이 됐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실린 원래 이야기는 옛날 중국의 작은 도시에 알라딘이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것으로 설정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원제인 ‘천일야화’는 이슬람 지역의 동부지역, 즉 지금의 이란인 페르시아 지역 이야기가 많이 수록돼 있었다. 그래서 알라딘이 살던 중국의 어느 도시는 실크로드를 통해 이슬람권과 교류하던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공간 배경만 중국일 뿐 등장인물은 중국식 이름이 아니라 페르시아-이슬람권의 이름을 쓰는데, 이는 원작의 화자가 중국식 작명법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아라비안 나이트>가 서양에 번역돼 소개될 때는 삽화에서 알라딘이 중국인으로 묘사되기도 했지만, 20세기 중반 영미권에서 영화화되면서 주요 등장인물은 유럽인 배우들이 맡았고, 무대배경도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아랍 지역으로 바뀌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영국에서 만들어진 <바그다드의 도둑>(1940)과 <천일야화>(1945)다. <바그다드의 도둑>에서는 왕위 찬탈을 노리는 간신 자파를 처음으로 등장시켰고, 이후 <천일야화>와 디즈니의 <알라딘>에 악당으로 등장한다. 1991년 걸프전이 발발했고 사담 후세인 집권기의 이라크를 연상시키기에 바그다드를 1992년과 2019년 디즈니판에선 가상의 도시 ‘아그라바’로 바꾸었다.

원작의 여주인공 이름은 바드룰바두르이지만, 위의 영국 영화에서는 아르미나로 이름이 바뀌었고 백인 배우들을 기용했다. 1992년과 2019년 디즈니판에선 꽃의 이름이기도 하면서 미국인 관점에서는 아랍 여성처럼 보이는 자스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브라운색 피부를 지닌 배우를 기용했다. 대체로 1990년대 이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영화들은 이전의 동화에 담겨 있는 소극적 여성상에 변화를 주어왔다. 2019년판 <알라딘>의 자스민 공주도 수동적으로 청혼자와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를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여성으로 술탄의 자리에 오른다. 이전의 소극적 여성상은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활발해진 현재 사회와 맞지 않기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으리라.

한가지 더. 이전 텍스트들은 남성 주인공 알라딘의 모험과 액션을 강조하지만 디즈니판은 지니가 주도하는 뮤지컬로 바뀐다. 뮤지컬은 미국 대중문화에서 주요한 장르다. 미국 영화에선 1970년대 이후 뮤지컬이 침체됐는데, 디즈니의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통해 부활했다. 디즈니의 <알라딘>에서 이전과 달리 지니는 훨씬 경쾌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램프에 갇힌 노예라는 점이 한층 더 부각되고 알라딘의 마지막 소원인 지니가 자유로워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지니 역을 맡은 흑인 배우 윌 스미스의 대사를 통해, 지니의 해방은 미국의 노예 해방의 역사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영화의 장르와 캐릭터 구성을 뜯어보면, <알라딘>은 외국의 이야기가 어떻게 미국화되는지를 보여주는 텍스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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