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지> 편집장 최근 디즈니는 새롭게 제작하는 실사판 <인어공주>의 주연으로 흑인인 핼리 베일리를 캐스팅해 큰 화제를 일으켰다. 추억의 명작이 새로운 옷을 입는 데 기대를 갖는 이도, 변화에 당혹스러워하는 이도 있었다. 최근 개봉한 <알라딘>에서 재스민 공주의 비중이 높아지는 등 디즈니의 리메이크에는 매번 인상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물론 이를 반기지 않는 이들도 있다. 1989년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와 달라진 모습에 자신의 추억이 망가졌다는 볼멘소리 같은 것이다.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가재 세바스찬이 부른 낙천적인 히트곡 ‘언더 더 시’로 기억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어공주 애리얼의 감동적인 발라드 ‘파트 오브 유어 월드’도 빼놓을 수 없다. 난파선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을 수집하며 지상 세계에 대해 가슴 벅찬 동경을 토로하는 이 곡은 작품의 갈등을 아름답게 함축한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디즈니의 발라드 넘버에는 대체로 일관된 정조가 있다. 재스민은 답답한 공주의 삶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환희를 노래한다. 뮬란은 수면에 비친 자신이 진짜 자기 모습이 아니라고 갈등한다. 무지개 너머를 꿈꾸거나 마법이 일어나길 기다리기도 한다. 특히 이 노래들의 후렴은 지금의 세계와 갈등하며 변화와 탈출을 애타게 바라는 심정을 노래한다. 어린이가 가장 깊게 이입할 감정이 현재 세계와의 불화라니 조금은 암울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대중문화의 큰 흐름이 어린이이고 싶은 어른, 곧 ‘키덜트’를 겨냥한다는 것은 익숙한 이야기다. 우리 대중은 어린 시절 장난감이 살아 움직이는 것(<트랜스포머> 시리즈)에 열광하고, 만화 주인공에게 철학의 옷이 씌워지는 것(마블과 디시코믹스)을 즐기며, 십대와 같은 열정을 느낄 통로를 찾아 아이돌에게 빠져들고, 디즈니 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한다. 이런 작품들이 어린이만을 위한 ‘유치한 것’이라는 편견도 과거의 것이다. 이제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즐기는 것을 넘어 어른들에게 더 소구하는 작품으로 변모해왔다. 탈출을 꿈꿔야 하는 유년기를 보내며 자란 어른들의 보상 심리일까. 어른 관객들도 유난히 환호한 작품 <겨울왕국>은 디즈니의 발라드 넘버에 부인할 수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 ‘렛 잇 고’의 후렴은 단호하게 “내려놓자”고 말한다. 동경도 슬픔도 없는, 오직 자기 자신을 향한 메시지다. <알라딘> 리메이크의 ‘스피치리스’ 역시 “나는 침묵하지 않겠어”가 후렴이다. 의지와 용기를 강조하는 세계로 변한 것이다. 어린이에게 더 진취적 메시지를 전하자는 취지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이 주 관객층이 된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어른에게 더 어울리는 메시지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어른의 미덕은, 학교와 가정교육을 의지만으로 거스를 수 없는 어린이들의 그것과 달라야 하므로. 디즈니가 가장 급진적인 작품을 만드는 기업은 아니다. 그러나 시대의 요구에 따라 착실히 변화를 거듭해온 것만은 분명하다. ‘디즈니 공주’들이 선택받는 ‘공주님’에서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주인공으로 달라진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디즈니 발라드는 키덜트가 부상한 지금의 대중문화 환경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변화를 꿈꾸는 것은 1989년 <인어공주> 시대의 어린이에게 국한돼야 한다. <알라딘> 리메이크 시대의 어른은 침묵하지 않아야 하고 또한 타인을 함부로 입 다물게 해서도 안 된다. 하물며 다양한 어린이들에게 용기를 주겠다는 취지에 대해 자신의 유년기를 들먹이며 칭얼대는 것은 보편적으로도 어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디즈니 발라드의 출발점에서 어린이들이 탈출을 꿈꾸게 하는 현실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진보적인’ 디즈니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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