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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예능에 노래는 꼭 필요할까 / 미묘

등록 2019-08-09 17:24수정 2019-08-09 19:12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예능 프로그램에 아이돌 가수가 출연하면 대체로 짧게나마 노래를 듣는 시간이 마련된다. 진행자는 흔히 “이렇게 모셨으니 안 들어볼 수 없겠죠?”라고 말한다. 무대를 따로 마련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는 있는 자리에서 한두 소절을 부르는 데 그친다. 아이돌일 경우에는 퍼포먼스가 중요하므로 자리에서 일어나 비교적 여유가 있는 공간으로 나가게 된다. 반주를 틀어놓고 안무를 보여주거나 무반주로 한 대목 정도를 불러 보이기 마련이다. 매우 전형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풍경이다. 그만큼 이미 예상해 준비하고 출연한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럼에도 가수 또는 아이돌의 일은 당사자가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해서 완성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공간의 넓이나 바닥의 재질, 음향 환경 등 많은 여건이 받쳐줘야 한다.

물론 아이돌이라면 예능이 가장 고달픈 무대는 아닐 것이다. 우천시 젖은 무대에서 비를 맞으며 공연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연말이면 임진각의 혹한 속에서 무대를 갖기도 한다. 전국의 다양한 무대를 바쁘게 오가며 행사장마다 다른 음향이나 무대 환경을 확인하고 준비하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행사가 콘서트와 다른 본질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콘서트는 가능한 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 음향과 무대 동선, 연출 등을 충실히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 역시 콘서트는 아니다. 다만 가수들에게 즉흥적인 듯이 가벼운 조로 노래를 부탁하는 모습을 불특정 다수인 시청자에게 전송하고 있을 따름이다.

방송국 카메라 밖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부적절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석에서 우연히 만난 가수에게 다짜고짜 노래를 해달라고, 시인에게 시를 읊어달라고, 개그맨에게 웃겨달라고 요청한다면 큰 결례다. 어떤 일을 업으로 삼게 되면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한 고민과 준비가 필요해지고, 부적절한 여건에서는 함부로 일하지 않으려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를 존중하지 않으면 직업인으로서의 상대방을 함부로 대한 것이 된다. 상대의 직업이 무엇이든 그는 처음 만난 사람이 언제든 요청만 하면 봉사하기 위해 그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아이돌들에게 예능 출연은 일상이 아니라 업무라는 것이다. 곡을 홍보할 기회가 된다는 시각도 있다. 수치화하기는 어렵지만 예능에서 짧게 선보이는 안무와 노래가 홍보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예능을 통해 아이돌이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그것이 인기로 이어진 건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인상적인 발언을 했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예능 방송이 행사나 콘서트와 다른 또 한 가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전문 음악방송이 아닌 한 가수가 보여주는 짧은 퍼포먼스는 예능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기획이 아니다. 전체 프로그램 중에서 따지자면 부차적인 여흥 요소다. 그렇기에 다시, 노래하길 요구는 하지만 그에 부합하는 여건을 준비하려 하지는 않는 것일지 모른다.

한국 대중음악이 날로 수준을 높여가는 데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그러나 삶을 고스란히 쏟아부어 자신을 갈고닦는 가수들의 노력이 그 중심에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예능에서 이들에 대한 직업인으로서의 존중을 볼 수는 없을까. 가수에 대한 대접은, 곡의 진면목을 확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무반주 한 소절을 방송에 내보내는 게 아니다. 퍼포먼스에 충분한 환경이 마련됐을 때 노래를 청하는 것이다. 방송의 기획에 있어 곡을 들려주는 게 중요하다면 말이다. 반대로 진솔하고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다면 그것에만 충실해도 된다. 언제든 누구든 시키기만 하면 자판기처럼 여흥을 쏟아내는 것만이 가수로서 매력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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