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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영광굴비 / 김영배

등록 2020-01-14 18:13수정 2020-01-15 02:39

기운을 차리게 도와주는 생선이라 해서 ‘조기’, 그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것을 ‘굴비’라 하는데, 굴비 앞에는 ‘영광’이란 지명이 붙어야 빛이 난다. 전성기 때만 못하다지만, 영광굴비는 설 명절을 앞두고 선물 인기 순위의 앞자리에서 빠지지 않는다. 영광군청에 물어봤더니 2018년 기준으로 군내 굴비 가공업체 460곳에서 굴비 1만1124톤을 생산해 매출 3240억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전국 굴비 생산량의 80%가 영광 지역 몫이라고 하니 역시 ‘굴비 하면 영광’이다.

본래 영광굴비라 하면 전남 영광군 법성포 칠산 앞바다를 지나는 참조기를 쓴 것을 일컬었다고 한다. 해류와 수온의 변화에 따른 어획량 감소로 지금은 제주 추자도, 목포 흑산도, 멀리는 동중국해에서 잡히는 참조기도 영광굴비의 재료가 된다.

영광굴비의 핵심은 잡힌 지점보다 가공 방식이다. 다른 지역에선 소금물에 조기를 담갔다가 말리는 방법을 쓰는 데 견줘, 영광굴비는 간수를 완전히 뺀 천일염으로 조기를 켜켜이 재는 방식(섶간)으로 만든다. 1년 이상 바닷바람에 말린 굴비를 통보리 항아리에 저장해 속의 기름기가 거죽으로 배어나게 한 게 ‘보리굴비’다. 작가 김영하는 영화 에세이 <굴비낚시>에서 영화를 굴비 같다고 했다. ‘한때는 조기였으며 모두 똑같은 태양 아래 말려졌으나’ 다루어지는 방식이나 손질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인, 적당히 가공된, 생선이면서 생선이 아닌 굴비에서 현실과 영화의 관계를 떠올렸던 것이다.

귀한 것에는 으레 가짜의 그림자가 따라붙듯 영광굴비도 가짜 탓에 속을 끓인다. 국내 수산물 가공업체가 중국 어선에서 잡은 참조기를 수입해다가 국내산에 섞어 진짜 영광굴비의 물을 흐리는 수가 적지 않다. 2018년에 발각돼 지난 9일 1심 판결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역대 최대 규모의 영광굴비 사기 사건 또한 이런 수법이었다. 검찰에 들통나기 전 8년에 걸쳐 중국산 참조기 250억원어치로 650억원의 수익을 남긴 대형 사기였다. 재판부는 “굴비 가공 자체는 영광에서 이뤄졌다고 하지만, 국내로 유통되는 거리가 멀고 그 과정을 감독할 수 없어 신선도나 품질 면에서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소비자뿐 아니라 진짜 생산자를 위해서라도 가짜는 엄히 벌받아야 한다.

김영배 논설위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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