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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슬픈 연정

등록 2020-02-13 18:11수정 2020-02-14 02:36

조한욱 ㅣ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18살의 잠바티스타 비코는 우연한 기회에 서점에서 지체 높은 주교이자 법학자와 법학 교육의 방법론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에 대단히 흡족해진 주교는 자신의 동생 도메니코 로카 후작이 성주로 있던 성에서 조카들의 가정교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조카들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당시 인구 250명에 불과하던 발로타의 한적한 성에 거주하던 동생에게도 좋은 말동무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였다.

비코는 고향인 나폴리의 남쪽 칠렌토 지역에 있는 그 성에서 9년을 보냈다. 그 시기는 비코가 근처 수도원에 있는 도서관까지 방문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두루 섭렵하며 학자로서의 내면을 충실하게 다진 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자서전을 읽으면 그가 고전은 물론 당시 문화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일어나고 있던 학문적 논란과 관련된 저작들까지도 확고한 관점을 갖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혈기왕성한 젊은 청춘에게 학문만 존재했을까? 로카 후작에게는 3남1녀가 있었는데 딸의 이름이 줄리아였다. 비코는 줄리아를 연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코 드러낼 수는 없었다. 사회적 신분의 격차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그가 1693년에 발표한 시의 제목 “절망한 자의 사랑”은 “절망한 자의 고통”이라고 옮겨도 무방하다. 줄리아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줄리아 역시 비코에게 비슷한 감정을 품었던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신분의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비코의 연정이 더욱 슬픈 것은 후견인의 보호를 받는 열등한 존재로서 그 결혼식의 축시를 그가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연은 비코의 자서전은 물론 웬만큼 상세한 전기에도 나오지 않는다. 남녀문제야 기록할 가치가 없다는 선입관이 작용해서일까? 오늘날 칠렌토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발로타의 성에는 비코 박물관이 들어섰다. 그리고 비코와 줄리아의 이야기가 지역 신문에 나왔다. 비코의 슬픈 연정은 관광의 특수를 누리기 위해 이용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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