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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민주당의 정체는 무엇인가 / 김누리

등록 2020-02-16 18:43수정 2020-03-15 21:58

김누리 ㅣ 중앙대 교수·독문학

흔히 ‘나치당’이라고 알려진 히틀러 당의 정식 명칭은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이었다.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하고 한 첫 행위는 사회주의자와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와 탄압이었다. 한국 역사상 민주주의와 정의를 가장 철저하게 짓밟은 무리들이 만든 정당의 이름은 ‘민주정의당’이었다.

정치 언어란 이렇게 기만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당마저 그럴 줄은 몰랐다. 임미리 교수 고발 사건이 충격적인 것은 민주당이 자신의 역사와 정체성의 핵심인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나선 데 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고갱이가 아닌가.

민주당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세상을 꿈꾸는 정당인가?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보여준 기회주의와 ‘철학의 빈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이중잣대와 특권의식, 임미리 교수 사건에서 표출된 오만과 반민주성…. 최근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보며 ‘민주당의 정체’가 문득 궁금하다.

민주당은 흔히 말하듯 민주개혁정당인가? 민주당은 민간독재와 군사독재 시대에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민주정당’임은 분명하나, 정권을 잡은 뒤 한국 사회를 질적으로 개혁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절반만 진실이다.

민주당은 진보정당인가? 흔히 민주당(계열 정당)은 진보정당, 자유한국당(계열 정당)은 보수정당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완전 거짓말이다. <조선일보> 프레임이다. 국제적 기준에서 보면 민주당은 보수정당, 한국당은 수구정당에 가깝다. 한국당의 수구성에 대해서는 ‘보수를 위한 변명’이라는 칼럼에서 상론했다. 읽어보시길. 민주당의 보수성은 일일이 그 사례를 들 것도 없다. 민주당의 노동정책, 재벌정책, 복지정책을 상기해보라.

민주당은 좌파정당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황교안이 보기엔 좌파정당이고, 심상정이 보기엔 우파정당이다. 독일의 보수당 총리 앙겔라 메르켈의 시각에서 본다면 민주당은 보수적인 우파정당이다.

정리하면, 민주당은 민주주의의 역사를 계승해온 보수정당이고, 한국당은 독재의 전통에 뿌리를 둔 수구정당이다.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 정상적인 정치 구도를 가진 나라가 아닌 것이다. 보수를 참칭하는 수구와 진보를 가장하는 보수가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매개로 권력을 분점해온 ‘수구-보수 과두지배체제’다. 이것이 해방 이후 지난 70여년간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경화된 정치지형을 가진 나라로 만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과두지배 세력, 즉 보수와 수구 사이에는 정책상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민주당과 한국당의 정책을 비교해보라. 경제정책, 재벌정책, 노동정책, 사회정책, 복지정책, 외교정책, 교육정책 등 과연 어디에 두 정당의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는가. 이들의 차이란 정말이지 ‘아주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

두 거대정당은 차이가 거의 없기에 역설적으로 더욱 극적인 대립을 과장한다. 이들의 극한 대립은 한편의 연극이다. 보라, 이들은 거칠고 과격한 모습으로 ‘조국 전쟁’을 벌이지만, 정작 중요한 싸움은 하지 않는다. 재벌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자를 ‘기업 살인’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세계 최고의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어떻게 정의로운 과세를 실현할 것인가, 어떻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아이들을 이 살인적인 경쟁에서 해방할 것인가, 어떻게 이 학벌 계급사회를 혁파할 것인가. 모든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을 두고 이들은 결코 싸우지 않는다. 지금의 현실에 두 정파 모두 만족하기 때문이다. 현 질서의 확고한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수구와 보수가 결탁한 이 강고한 ‘기득권 정치계급’을 타파하지 않는 한 ‘헬조선’은 결코 극복될 수 없다. 두차례의 정권 교체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은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지형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질적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제 정치지형을 바꿔야 한다. 수구-보수 과두지배체제를 진정한 의미의 보수-진보 경쟁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냉전에 기생해온 낡은 수구는 정치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생태적·사회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젊은 진보가 무대에 올라야 한다. 민주당의 시대적 사명은 좋은 보수를 자임함으로써 가짜 보수를 퇴장시키고, 자신의 왼쪽에 진짜 진보의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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