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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세리와 정혁이 결혼한다면? / 김광길

등록 2020-02-26 18:26수정 2020-02-27 02:39

김광길 ㅣ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남한 재벌가 딸 세리와 북한의 특급장교 정혁의 운명 같은 만남과 사랑을 소재로 한 <사랑의 불시착>이 지난주에 숱한 화제를 남기고 끝났다. 북한의 일상생활에 대한 소소한 얘기들이 보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사랑의 불시착>은 현빈과 손예진이 스위스에서 해마다 2주 동안 인생 최고의 순간을 함께하는 것으로 끝났다. 동화의 해피엔딩은 주인공들이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사랑의 불시착>은 세리와 정혁의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북한 주민과 남한 주민의 결혼은 법적으로 가능할까? 결혼 등 친족관계의 법률관계에 대해 우리는 민법에서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우리 민법상 혼인이 성립하려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정한 바에 따라 신고하여야 한다. 북한은 우리와 달리 민법과 별도로 가족법과 상속법이 따로 제정되어 있다. 북한 가족법에 따르면 결혼은 신분등록기관에 등록하여야 법적으로 인정된다. 북한 주민과 남한 주민의 결혼은 어느 법에 따라야 할까? 북한 주민의 가족관계에 대해서 북한법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법률 체계상 가능하다. 북한에서의 북한법에 따른 혼인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북한이탈주민이 북한에 있는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특례를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 남한 주민과 북한 주민의 혼인에는 북한법과 남한법 가운데 어느 법이 적용될까? 어떤 사안에 국제적 요소가 있어 두 나라의 법률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을 때 어느 나라의 법을 적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법이 국제사법이다. 우리 국제사법에 따르면 혼인의 방식은 혼인거행지법에 의한다. 북한에서 혼인하면 북한법을 따르고 남한에서 혼인하면 남한법을 따르면 된다. 그런데 북한 주민과 남한 주민이 자유로이 각자의 국가에서 상대방 국가로 가서 혼인을 하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사실 남북 주민 사이에 여러 가지 혼인, 상속 등에 대한 법률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남한 주민과의 가족관계에서 배제된 북한 주민을 보호할 필요가 있음을 고려하면서도 법률관계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남한에서 사망한 피상속인의 재산에 대해 북한에 사는 피상속인의 후손이 상속할 권리가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우리 법원에서도 다루어졌다. 남한에서 거주하던 할아버지가 남한에서 사망하면서 재산을 남겨두었다. 이 할아버지의 아들인 북한 주민이 할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북한에 살아 있었다. 이 할아버지 아들의 딸이 할아버지의 재산에 대해 상속권을 주장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원고가 패소하였다. 그러나 상속권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기간 내였다면 상속권이 인정되었을 것이다. 우리 법은 북한 주민에게도 상속권 자체는 인정된다고 전제하면서도 북한 주민이 상속받은 재산을 북한 주민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는 법률이 제정되어 있다.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이다.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 이전에 생각할 수 없었던 남북 간 친족 상속에 관한 법률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었던 개성공단 사업도 가족관계에 관한 법률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개성공단에서 남한 주민과 북한 주민 간에 사랑이 싹텄다면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 개성공단의 개발과 운영을 위해서 북한이 제정한 개성공업지구법에는 이 문제에 대한 규정이 없다. 다만 이 개성공업지구법을 집행하기 위해 북한이 제정한 하위 법규인 ‘개성공업지구 출입·체류·거주규정’에 개성공단에서 결혼의 사유가 생겼을 경우 북한의 개성공업지구출입사업기관에 등록을 하도록 규정하였다. 개성공단 가동 기간에 실제로 결혼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 그러나 청춘 남녀가 사는 곳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앞으로 개성공단 가동이 재개되어 남북의 청춘 남녀가 남북 교류의 장에서 사랑을 꽃피우고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스위스에서 세리와 정혁이 2주간의 짧은 사랑의 시간을 즐기는 것을 넘어 개성공단에서 세리와 정혁이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후일담을 듣는 상상을 혼자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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