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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코로나19 보도, 그 40여일의 교훈 / 황보연

등록 2020-03-04 18:39수정 2020-03-05 09:25

황보연 ㅣ 사회정책팀장

“17번째 확진자가 서울역 인근에서 ○○○순두부를 먹었다는데….”

코로나19 이슈를 담당하는 팀장에게 닥친 첫번째 난관은 과잉보도·속보경쟁에 무심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확진자 수가 서른명을 밑돌던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언론의 관심은 온통 환자들의 동선에 쏠려 있었다. 확진자 동선 공개는 접촉자들의 감염 예방을 돕기 위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환자의 증상 발현 이후 전파력이 생긴다고 보지만, 코로나19의 초기 경미한 증상을 고려해 하루 전날 동선부터 공개해왔다. 그 외의 정보는 환자의 사생활일 뿐이다.

그런데도 과잉보도가 연일 쏟아졌다. 17번째 확진자가 순두부를 먹으러 어디에 들렀다는 정보도 증상 발현 이틀 전 일이어서, 온 국민이 알 필요는 없었다. 시민들의 불안을 달래느라 각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사전 자료가 유출되는 사고까지 빈발하면서 속보경쟁은 더 뜨거워졌다. 여기에 ‘동참’하지 않으려다 보니, 때때로 감염병 국면의 긴장감이 떨어져 보일라 신경이 쓰였다. 사내 일부에서도 “왜 우리 신문은 확진자 동선 보도를 신속하게 하지 않느냐”는 질타가 들려왔다.

결국 세간의 따가운 시선에 일부 환자들은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했다. 이를 지켜본 일반 국민에게도 ‘확진자가 되면 주변으로부터 비난을 듣게 된다’는 인식이 새겨졌다. 이런 귀결은 사실 감염병 국면에서 의료계가 우려해온 대목 중 하나다. 당사자들이 방역 당국을 피해 다니게 만드는 역효과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대한예방의학회 등에선 “감염병 방역활동의 성패는 배제와 차별이 아니라 포용과 인권보호에 달렸다는 것이 그간 감염병 유행에서 얻은 보건학적 교훈”이라는 당부가 나왔다.

더 이상 한명 한명을 따질 수 없을 만큼 확진자 수가 불어나자, 이번에는 특정 집단에 책임을 지우고 낙인을 찍으려는 목소리가 기세를 떨쳤다. 입국금지 논란이 끊이지 않은 중국인이나 신도들이 대거 감염된 신천지예수교가 주된 타깃이다. 감염병 위기 국면에서도 표심을 챙기려는 정치권의 논리가 일조했다.

방역 당국과 의료 전문가 그룹에선 외려 시큰둥한 반응이 많았다. 코로나19는 증상이 경미한 초기부터 엄청난 전파력을 보인다는 특성으로, 이미 지역사회 감염이 일정 수준 이상 진행된 상태다. 경증 환자가 80%에 이르지만, 기저질환을 앓아온 고령층엔 치명적이다. 중증 환자의 조기 진단과 치료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정책 역량을 모아도 부족한 국면인데, 특정 집단의 책임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나 강제수사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은 방역에도 별다른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31번째 확진자 이후로 해외 유입에 의한 전파 사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인 입국금지를 둘러싼 논쟁을 지금 벌이자고 하는 것도 실익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위기 소통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신종 감염병의 해법은 애당초 단순명쾌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위기 소통 문헌에서 ‘언논’(unknown)이나 ‘불확실성’은 단골 주제이고 과학과 정치가 지양해야 할 유혹이 무엇인지 알려준다”며 “과학은 주어진 지식의 정확성을 강조하려는 유혹을, 정치는 복잡한 실재를 이분법으로 단순화하고 확신하려는 유혹을 조심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요구에 부응하느라 섣부른 리더십을 부각시켜선 안 된다는 얘기다.

감염병 위기는 그 나라가 평소 갖춰온 의료체계와 자원에 따라 피해의 크기도 갈릴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지금 소통을 나누어야 할 주제가 당장 눈에 보이는 위기에 관한 대처로 좁혀져선 안 된다는 의미다. 코로나19는 감염병이 닥쳤을 때 노인과 만성질환자, 장애인 등 건강 취약층이 어떤 타격을 입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시민단체와 의료계가 “일차의료에 기반을 둔 주치의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공공병원을 확충하지 않은 실정에선 대처 능력이 확 떨어진다는 사실도 거듭 확인됐다.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서 시야를 좀 더 멀리 내다봐야 하는 이유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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