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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코로나, 한국 총선, 미국 대선 / 황준범

등록 2020-03-05 18:26수정 2020-03-06 02:09

황준범 ㅣ 워싱턴 특파원

“손세정제는 오늘 다 나갔고, 마스크는 재고 떨어진 지 한참 됐어요.”

며칠 전 워싱턴에서 차로 두어 시간 떨어진 곳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인구 적은 곳이니 혹시?’ 하며 현지 상점에 들렀다가 점원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근처 상점 두 곳을 더 돌아, 선반 안쪽에 아슬하게 남아 있는 생소한 브랜드의 손세정제 몇통을 희귀품처럼 집어 들고 왔다.

한국의 심각한 상황에 견줄 바가 못 되지만, 미국에서도 코로나19는 생활 속 깊이 들어와 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온 뒤 생필품 가게들이 북새통을 이뤘고, 한국인들은 기침 한번 했다가 주변의 미국인들이 화들짝 달아나거나 “저 사람 코로나야”라고 수군대는 일을 매일 겪고 있다. 학교들은 코로나19 관련 생활 지침을 수시로 학부모들에게 보내고, 봄방학에 계획해둔 환불 불가 여행을 취소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미국 정부도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매일 백악관에서 태스크포스 회의를 한 뒤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한다. 미국 내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해외 일부 지역에 대한 여행금지, 한국·이탈리아발 미국행 여행객들에 대한 의료검사 의무화, 미국 내 코로나19 검사 확대 등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미국 모두 코로나19 사태와 큰 정치 일정이 맞물려 있다. 한국은 4월 총선, 미국은 11월 대선이다. 그렇다 보니 미국에서도 질병 대처와 정치 공방이 뒤섞이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코로나19 검사 능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에 “오바마 정부 때 검사와 관련해 해로운 결정을 했다”며 전 정부로 책임을 돌렸다. 미 언론은 오바마 정부에서 검사를 제한하는 조처가 실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질병 전문가가 아닌 충성파 정치인 펜스를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책임자로 앉힌 것을 놓고도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보건당국이 직설적인 발언으로 국민의 불안감을 키우는 것을 막고 주가를 관리하려는 의도라는 의심에서다. 트럼프는 전문가들이 “백신 개발에 1년 이상 걸린다”고 하는데도 “나는 ‘몇달 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며 속도전을 주문했다.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선 음모론도 나왔다. 낸시 메소니에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이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은 시간문제”라고 경고음을 냈는데, 이는 그가 트럼프와 사이가 안 좋았던 로드 로즌스타인 전 법무부 부장관과 남매라는 사실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정치가 끼어들어 사태 해결을 방해하는 사례들이다.

한국에는 아직도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의 “핫 스폿”(빈발지역)이라고 언급한 한국에 대해 미국 입국 금지 조처를 취할까봐 한인들이 불안에 떨고 있고, 외교부와 주미대사관이 치열한 외교전을 펴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입국 금지를 결정하면, ‘문재인 중국 대통령’을 말하는 이들은 “트럼프가 필요한 조처를 했다”고 칭찬할 건가. 막대한 국가적 위신 추락과 경제적 타격을 가져올 사태를 못 막았다며 또 우리 정부를 비난할 건가.

미국 6개 정권에 걸쳐 질병 사태 대응에 참여해온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의 앤서니 파우치 소장은 <폴리티코>에 “국민들에게 솔직하면서도 겁에 질리지 않게 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과잉대응을 자제하면서도 불안감을 달래며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야 하는 과제를 전세계가 함께 떠안고 있다. 아무리 선거가 급해도 앞뒤·좌우는 살피면서 가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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