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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는 역사다] 죽지 않은 봉개 / 김태권

등록 2020-04-02 18:40수정 2020-04-03 02:16

봉개동이 이름을 되찾은 이야기 (1948년 4월3일의 4·3사건)
봉개동이 이름을 되찾은 이야기 (1948년 4월3일의 4·3사건)

제주는 좁은 땅이 아니다. 바닷가 사람과 산에 사는 사람은 삶의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1948년 10월에 “해안에서 5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은 무장대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이 나왔지만, 중산간에 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마을을 떠날 수는 없었다. 11월에 계엄이 선포되고 중산간마을은 하나하나 파괴당했다. 수만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봉개동은 제주 중산간의 마을이다. 옛날에는 봉개리였다. 11월20일께 정부군이 몰려와 마을을 불태웠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달아나거나 움막을 짓거나 옛 일본군 진지에 숨어 살았다. 1949년 2월4일의 ‘대토벌'. 정부군은 박격포며 로켓포를 쏘고 비행기를 몰아 기총소사를 했다. 민간인 학살이었다. 360명을 죽이고 130명을 잡았는데 압수품에 총이 없다니.

7월에 군은 생존자들을 데려다 마을을 재건했다. 마을 이름은 ‘함명리'가 됐다. 함병선과 김명, 정부군 지휘관과 참모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함병선은 나중에 국립묘지에 묻힌다). 가족을 죽인 자의 이름을 기억하며 살라는 잔인한 의도였을까. 마을 사람들은 여러 해 숨죽이며 지내다 나중에 ‘봉개'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다섯 돌부처 오석불이 있는 곳도, 제주4·3평화공원과 기념관이 있는 곳도 여기 봉개동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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