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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코로나가 일깨운 전문성의 가치 / 구본권

등록 2020-04-08 17:12수정 2020-04-09 02:09

전문가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자격증의 문턱과 전문지식에 대한 배타적 접근 및 해석 권한을 기반으로 전문가의 권위와 지위가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위태롭다. 인터넷의 정보 민주화는 누구나 전문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수업중 스마트폰 검색으로 강의 내용을 확인하는 학생들이 두렵다는 교수들도 있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전문성을 축적한 ‘덕후’가 즐비한 세상에서 전문직의 권위와 신뢰는 흔들리고 있다. 톰 니콜스가 펴낸 <전문가와 강적들>의 부제는 ‘나도 너만큼 알아’다.

황당한 주장도 인터넷에선 손쉽게 근거를 장만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사실이 자신의 가치와 충돌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고수할 수 있고 반대 증거를 기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정보 전염병’(인포데믹)도 함께 불러왔다. 각국 전문가와 지도자들도 천차만별이다. 코로나를 독감과 비교하고 집단면역을 거론하던 미국, 영국, 스웨덴 등은 큰 희생을 치르고 있다.

적극적 검사와 치료, 투명성을 앞세운 한국 방역이 주목받는 배경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있다. 확진자 폭증 국면에서 그의 브리핑은 막힘없었고 상세하고 객관적이었다. 낙관도 비관도 거리를 둔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그가 상황을 장악하고 있다는 신뢰가 전달됐다. 정치권과 언론의 잡음도 그의 냉정한 전문성에 묻혔다. 온 국민이 전문가의 입에 집중한 것은 2002 월드컵 히딩크 감독 이후 오랜만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정은경 리더십을 크게 보도했다.

사회 각 부문은 더 전문화했지만, 전문가의 권위는 추락했다. 전문성을 특권화하고 사익화하면서 시스템과 신뢰를 붕괴시킨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사법 농단, 고교 성적 조작, 유령 학회 참석 등은 해당 분야를 넘어 사회적 신뢰 시스템을 무너뜨린 사례다. 또 다른 미꾸라지를 막기 위해 투입된 사회적 비용과 번거로움이 엄청나지만 실효성은 낮다. 정은경 본부장을 통해 우리 사회는 전문성과 신뢰의 가치를 확인했다. 허위정보가 넘쳐나는 인포데믹의 혼란 상황일수록 전문성과 신뢰가 절실하다. 전문성의 문턱이 낮아지고 위협받고 있지만 진정한 전문가를 키워내고 권한을 부여하는 일이 사회 전체를 위한 일이자 지도자의 핵심 업무라는 걸 보고 있다.

구본권 산업팀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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