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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문 닫은 학교가 가르쳐준 것 / 김은형

등록 2020-04-21 18:02수정 2020-04-22 02:40

김은형 ㅣ 논설위원

지난 주말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던 콘텐츠가 두개 있다. 하나는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만든 온라인 개학식 동영상. 노신사로 보이는 교장 선생님이 금발 가발에 드레스, 고무장갑까지 끼고 ‘반백 엘사’를, 하얀 우비를 입고 당근을 입에 문 교감 선생님이 ‘반백 올라프’를 자처하며 연기한 <겨울왕국> 패러디 동영상이었다. ‘엄근진’(엄숙·근엄·진지)을 내려놓은 교장 선생님이 운동장과 복도를 누비며 주제가의 노랫말을 바꿔 “너희들이 보고 싶다”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배꼽을 잡았을 테지만, “이게 뭐라고 울컥했다”는 학부모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코로나19로 집에만 갇혀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 아이들과 실랑이하느라 지친 부모들에게 이 영상은 따뜻한 위로를 넘어 잊고 있던 학교의 가치를 새삼 곱씹게 했다.

다른 하나는 교육방송(EBS)의 온라인 학습관리 시스템인 ‘이비에스 온라인 클래스’ 기술 상황을 책임지고 있는 김유열 부사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크고 작은 접속 문제로 동네북처럼 두드려 맞고 있지만 갑작스럽게 결정된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이비에스 직원과 공무원, 교육 전문가와 기술진, 그리고 온라인 개학과 상관없는 기업 솔루션 지원팀까지 발 벗고 나서 ‘국가의 일, 학생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밤낮으로 땀 흘린 이야기는 의료진들이 코로나19의 전쟁터에서 벌인 사투 못지않게 큰 감동을 줬다.

물론 감동 스토리가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건 아니다. 온라인 개학이 마지막으로 이뤄진 20일에도 접속 지연이 발생했고 초등 저학년들의 출석 확인에 애를 먹은 학부모들은 여전히 ‘부모 개학’이라는 짐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콘텐츠 또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교사는 교사대로 고달프다. 계획에 없던 온라인 개학인 탓에 동영상 강의 준비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들, 게다가 알아가는 시간도 미처 갖지 못했던 낯선 아이들을 관리하는 건 때로 잠에서 깨우는 일부터 시작된다. 입시 준비의 리듬이 깨진 수험생들이 겪는 불안과 스트레스는 또 오죽한가.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부터 진정세까지 지난 석달의 시간이 우리에게 고통뿐 아니라 새로운 업무 환경이나 생활 방식 등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준 것처럼 온라인 개학도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가지만은 않을 게다. 초등 고학년 아이의 온라인 개학 수업을 하루 동안 지켜보면서 뜻밖에 나는 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교실이라는 공간, 교사의 통제, 친구들의 시선이 없는 수업에서 초등 1학년과 다를 바 없이 산만하고 제멋대로인 아이의 태도에 여러번 뒷목을 잡은 탓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건 수업 진도보다 경청, 배려, 절제 같은 사회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라는 걸 절감했다. 금발 가발을 쓴 교장 선생님에게 학부모들이 울컥했던 것도 한달간의 교육 공백에서 교사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교육도 대체할 수 없는 게 공교육의 가치라는 걸 문 닫은 학교가 알려준 셈이다.

더 나은 수업을 궁리하는 교사들의 노력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 것도 바람직하다. 오프라인 개학을 하게 되면 지금과 같은 전면 온라인 수업은 사라지겠지만 교육 현장에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연결되고 중첩되는 ‘뉴노멀’의 도래가 불가피할 것이다.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사들의 노력이 ‘가보지 않은 길’의 좌표를 안내할 터다.

그러나 이 모든 걸 떠나 모두가 힘겨운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얻게 될 가장 큰 교훈은 아마도 교육 당국과 교사, 학부모와 학생이 각자의 퍼즐 한 조각씩을 들고 ‘대한민국 교육지도’를 완성하는 주체라는 깨달음이 아닐까. 이비에스 김유열 부사장의 페이스북 글은 온라인 개학이라는 초유의 공교육 실험에서 보이지 않는 각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시켜줬다. 시스템 조력자들이 이럴진대 교사의 열의와 학생의 참여, 그리고 학부모의 성원이 온라인 개학의 성패를 쥐고 있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가보지 않은 길의 발걸음을 뗐다. 조금만 더 기운 내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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