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적도 친구로 삼고 친구도 적으로 돌렸다. 십대의 나이에 동학의 접주가 되어 동학농민운동 때는 황해도에서 농민군을 이끌었는데, 정작 김구를 습격해 총질한 사람은 ‘같은 편’이던 동학 접주 이동엽이고 그를 피신시켜준 사람은 농민군을 진압하던 안태훈이었다. 안태훈의 아들이 안중근이다. 김구는 한동안 안중근의 형제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 그런데 안중근의 아들이 변절하자 김구는 그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맥에도 편가르기에도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김구였다.
좌파도 우파도 자처하지 않았다. <백범일지>에는 “레닌의 똥까지 달다고 할 청년들”이라는 격한 표현도 나온다. 그런데 연안파 사회주의자였던 김학철에 따르면, 젊은 좌파 독립운동가들은 뒤에서 ‘노(老)완고’라 부르면서도 김구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신념 때문에 평생 싸우던 사람에 대한 경의랄까.
1949년 6월26일에 목숨을 잃었다. 누가 김구를 죽였나? 우익 청년 안두희가 범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누가 안두희의 뒷배를 봤나? 그건 아무도 모른다. 수상한 사실은 많다. 김구를 쏘자마자 군인들이 나타나 안두희를 데려갔다. 한국전쟁 때 안두희는 풀려났고, 나중에는 군수품을 납품해 큰돈을 벌었다. 배후가 누군지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죽었다. 혹시 그도 몰랐으려나.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