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에서 공짜로 위성항법장치(GPS)를 쓰게 된 편리함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1983년 9월1일 소련은 항로 이탈로 영공을 침범한 대한항공 007기에 미사일을 쏘았다. 탑승자 269명이 몰사한 참사를 계기로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국방부 반대를 무시하고 지피에스를 전격 개방했다.
위성항법장치는 냉전의 산물이다. 미국과 옛 소련이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유도탄 등의 정밀 타격을 위해 개발한 전략무기체계의 일부다. 미·소는 각각 20기가 넘는 인공위성을 쏘아올려 지피에스, 글로나스 시스템을 구축했다. 미국은 지피에스를 개방할 때 타국의 군사적 이용을 막으려 일부러 오차를 넣었다. 지피에스의 ‘인위적 오차’는 100m에 이르렀는데, 2000년 제거됐다. 그럼에도 지피에스 신호는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오차가 생기고, 고층건물·바위에 반사돼 생기는 신호 변화, 위성 위치 및 수신기 시계의 부정확성 등으로 여전히 30m 안팎 오차가 있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 인근에서 “목적지 근처입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라며 ‘먹통’이 되는 것도 오차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23일 35개 위성으로 이뤄진 중국판 위성항법장치 ‘베이더우’의 마지막 위성을 궤도에 올렸다. 베이더우(北斗)는 북두칠성의 앞 두 글자다. 베이더우 시스템은 2000년 시험위성 발사를 시작해 2018년부터 전세계에 위치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번 발사로 시스템을 완성했다. 100억달러(약 12조원)가 투입됐다. 중국은 베이더우의 군사용 신호 오차가 10㎝로, 미군용 오차 30㎝보다 월등하다고 주장한다. 공개용 신호의 정확도도 높아 중국의 내비게이션이나 차량공유 서비스 위치 정확도는 한국보다 뛰어나다. 중국은 ‘육해상 실크로드’(일대일로) 참여국에 정밀 베이더우 정보 제공을 약속하고 있다.
대항해시대 위도·경도 측정 능력처럼, 디지털 세상에서 정밀하고 독립적인 위치정보 시스템의 가치는 막대하다. 군사용은 물론 자율주행·드론 등 산업용 가치가 무궁하다. 유럽연합이 ‘갈릴레이 시스템’을 구축하고, 일본과 인도가 각각 ‘지역 항법 시스템’을 구축한 배경이다. 우리나라도 2035년까지 7개 위성을 쏘아올려 한반도 중심의 지역항법체계를 구축한다는 ‘한국형 위치정보시스템’(KPS)을 기획 중이지만, 갈 길이 멀다.
구본권 산업팀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