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주장이나 상대방을 모욕하는 막말은 위협이기도 하지만 비명이기도 하다. 우리를 인정해 달라, 이해해 달라는 절박한 사람들의 말법이고 몸짓이다. 무기를 내려놓게 하려면 우선 그 마음을 알아주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지난달 16일 오후 2시50분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다음날 보도했다. 교도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총선 뒤 한국 정부가 대북사업 구상을 본격화하자 갑자기 김정은 중태설, 사망설이 떠돌았다. 얼마 뒤 건재한 모습으로 김정은이 나타났지만, 북한 체제는 불안정해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김여정이 등장했다. 최고지도자의 운명을 뒷받침할 수 있는 권력승계 체제를 안팎으로 과시한 것이다. 평창올림픽에서 미소 짓던 김여정은 무례한 언사로 노골적인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면서 군사지도자로서의 위상도 보여줬다.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나면 불바다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 해 전, 판문점에서 북쪽 대표가 던진 한마디에 남한 사회가 발칵 뒤집혔던 일이 있었다. 도발적 위협이지만 사실은 맞는 말이다. 장사정포 수천문의 사정거리 안에 이천만명 이상의 수도권 주민들이 살고 있다. 남한은 대포가 가장 무섭다. 새삼 대륙간탄도탄에 놀랄 일은 아니다. 북한이 정말 파멸을 각오하면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만으로도 남한의 정보통신망과 원자력발전소까지 파괴할 수 있다. 섬세하게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남한 사회는 부분적 파괴만으로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몇년 전 한 남한 언론인이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북한의 핵심목표를 폭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국내 정치용 발언으로 통쾌할지는 몰라도 북한이란 국가의 본질을 모르는 위험한 말이다. 평양에 폭탄 하나만 떨어지면 외부 침략에 대한 저항을 기반으로 한 북한 체제의 정당성이 강화될 것이다. 그동안의 교육과 선전이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마지막까지 저항할 수 있다. 설사 단기간의 전쟁을 통해 물리적으로 점령한다 해도, 이라크 점령 이후 계속된 자살폭탄 테러와 유사한 저항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전쟁에서 승리란 무엇인가.
북한과 미국이 다시 협상을 시작하려고 한다. 회의장을 전전하면서 악수-웃음-대화-갈등-폭언-결렬-비난, 다시 악수-웃음-대화….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북측에서는 늘 그랬듯이 상대방을 비난하는 도덕주의적(도덕적이란 뜻이 아니고) 주장과 ‘단숨에’ 뜻을 이루고자 하는 일방적 태도, 자존심과 결사항전의 의지로 협상을 할 것이다.
결연한 입장과 유연한 연기력은 북한 지도자나 엘리트 집단에만 국한된 행동패턴이 아니다. 나이와 계층을 초월해서 많은 북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내면화된 행동패턴이자 사회적 생존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회담 소식을 접할 때마다 북측 대표들과 비슷한 행동패턴으로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던 탈북 아동과의 갈등과 협상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최근 출간된 나의 책에도 실린 사례지만 일부 소개해보려고 한다.
열두살 김광명(가명)은 내가 탈북 청소년을 위한 ‘하나둘학교’를 설립하고 교장 역할을 할 때 만났던 학생이다. 광명이가 조폭 영화를 교실에서 보겠다고 했다. 처음엔 한번만 보게 해달라고 빌었다. 떼를 쓰기에 영화 빌린 돈을 주겠다고 하자 펄펄 뛰면서 “돈 때문에 그러는 줄 아느냐”고 대들었다. 그러면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겠다고 하자, “배때기를 갈라버리겠다!”며 달려들었다. 나이에 비해 작은 몸집의 아이를 꽉 안으니 “네가 뭔데 엄마를 힘들게 하려고 하느냐”고 울면서 몸부림쳤다. 한참 안고 있었더니 놔달라고 했다. 잠시 뒤 돌아온 아이는 똑같은 표정으로 다시 빌고, 떼쓰고, 따지고, 덤비고, 안아주면 나갔다가 들어와서 조금도 민망해하지 않고 그 과정을 되풀이했다.
보다 못한 나이 든 청소년이 “아버지 같은 선생님에게 지랄한다”며 걸상으로 “대가리를 부숴버리겠다”고 해서 그쪽도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황당해서 표정 관리를 하던 나에게 한 아이가 “저 새끼 심리를 리해 못 하십니까?” 했다. 결국 교육 영화를 함께 보기로 하고 끝냈다. 저녁 식사 때 광명이는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걸었다. 그러곤 가만히 요구르트 한병을 내 식판 위에 올려놓았다.
며칠 뒤 놀이치료 전문가를 모셔 왔다. 광명이는 휙휙 그린 그림을 던지듯이 내밀며 “이런 장난은 왜 합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선생님은 그림을 찬찬히 보더니, “넌 더 잘 그릴 수 있었구나” 했다. “어? 내 마음을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유치원 아이같이 맑은 눈으로 물었다. 다음날부터 광명이는 내 옆에 꼭 붙어 다녔다.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주장이나 상대방을 모욕하는 막말은 위협이기도 하지만 비명이기도 하다. 우리를 인정해 달라, 이해해 달라는 절박한 사람들의 말법이고 몸짓이다. 무기를 내려놓게 하려면 우선 그 마음을 알아주어야 할 것이다.
정병호 ㅣ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