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7월27일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3년 1개월 2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이날 오전 9시57분 판문점에 마련된 정전협정 조인식장 동쪽 입구로부터 유엔 쪽 수석대표 해리슨이 입장했다. 동시에 서쪽 입구로부터 공산 쪽 수석대표 남일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파란색 탁자 위에 놓인 정전협정 문서에 서명하기 시작했다. 단 한마디의 인사말도 악수도 목례도 없었다. 해리슨과 남일은 펜을 바쁘게 움직여 각자 36번 이름을 문서에 적었다. 오전 10시12분, 해리슨과 남일은 서명을 마치자 조인식장을 서둘러 나가버렸다. 의례적인 기념촬영도 없었다. 해리슨이 먼저 헬리콥터를 타고 판문점을 떠났다. 이어 남일도 소련제 지프를 타고 판문점을 떠났다.
“거기에는 의식에 따르는 어떠한 극적 요소도 없고 강화에서 예기할 수 있는 화해의 정신도 엿볼 수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전’이지 ‘평화’가 아니라는 설명을 잘 알 수 있었다.”(최병우 기자의 정전협정 조인식 르포 ‘기이한 전투의 정지’ 가운데)
27일은 정전협정 체결 67돌이다. 남북이 7월27일을 맞는 풍경이 아주 다르다. 북한에선 이날이 `조국해방전쟁 승리의 날’(전승절)이며, 국가기념일(공휴일)이다. 북한은 한국전쟁을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자유와 독립을 수호한 반제국주의 민족해방혁명’(조국해방전쟁)이라고 규정한다. 북한은 7월27일을 ‘우리 인민의 제2의 해방날’인 전승절이라고 주장한다. 해마다 7월27일이면 북한 당정군 고위간부, 각계 주민들은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참배하고 국립묘지격인 대성산혁명열사릉 등에 화환을 바친다. 북한은 대대적인 전승절 기념행사를 벌여, ‘전쟁 승리’란 공적 기억을 체제 유지에 적극 활용한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1984>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고 썼다.
남한은 정전협정 체결일을 특별히 기념하진 않는다. 2013년부터 7월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정해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6·25의 노래’)처럼 남한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6월25일을 크게 기념한다. 정부가 한국전쟁을 부르는 공식 용어도 6·25전쟁이다. 6월25일 새벽 기습 남침한 ‘전쟁 책임’이 북한에 있으며 김일성이 ‘전쟁 범죄자’임을 강조한다. 올해가 한국전쟁 70주년이라 지난 6월부터 각종 기념행사가 국내외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국전쟁을 두고 남한은 ‘전쟁 책임’(6월25일), 북한은 ‘전쟁 승리’(7월27일)에 주목한다. 휴전 이후 67년 동안 남북은 ‘기억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남북의 생각은 화성인과 금성인만큼이나 다르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남북 모두 상대에 대한 ‘응징’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화해와 평화를 위해 증오와 전쟁의 담론인 6·25를 기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우리는 6·25를 기념하는 좁은 논리에서 벗어나, 이 비극을 현재의 여러 사회적·민족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평으로 논의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 그것은 6·25전쟁 시작을 넘어 7·27전쟁종식을 기억하고, ‘한국전쟁’ 전체를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으로의 인식의 전환을 말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전쟁이 남긴 분단질서의 극복, 전후 청산, 평화를 위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박명림 지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2002, 나남)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