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영 ㅣ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
한국에 와 있지만, 미국에 있는 동료들과 매주 화상 통화를 한다.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으로 쌓인 불안과 피로가 통화할 때마다 짙게 느껴진다.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 자녀가 있는 동료들의 표정은 더 어둡다. 최근 미국의 각 지역 교육당국은 오는 가을학기를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할지, 아니면 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듣게 할지 결정해 발표하고 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가을학기에도 공립학교 학생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팬데믹 전에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과제였는데, 학교와 유치원마저 문을 닫은 지 벌써 몇달째다. 동료들은 커다란 돌봄 공백의 늪에서 수업과 연구, 육아와 씨름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미국이 입은 사회, 경제적 타격을 회복하는 데에서 학교를 다시 여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학교를 다시 열어야 경제 재개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다고 믿고 일선 학교들과 교육당국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미국 학교들의 상황을 보면 섣불리 문을 열기 어려운 상황이다. 친트럼프 성향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학교 문을 열라고 명령을 내렸다가 주의 교원노조에 고소당하기도 했다. 왜 그럴까?
첫째, 특히 공립학교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 오랜 기간 공화당과 보수단체들은 이른바 ‘공교육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사교육과의 전쟁을 잘못 쓴 게 아니다. 이들은 공립학교를 교육의 질은 낮으면서 세금이나 축내는 존재로 본다. 그래서 학교에 가는 예산을 줄이고 학교 선택권을 부모에게 주는 시장 논리를 도입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그 운동을 적극적으로 이끈 사람이 현재 교육부 장관인 베치 디보스다. 18살 미만 미국 학생의 90%가 공립학교에 다니는데, 트럼프 행정부의 교육 수장은 정작 공립학교 경험이 전혀 없다. 디보스 장관은 실제로 공립학교의 방과후 프로그램에 지원하던 돈을 줄이는 등 교육부 예산 자체를 깎는 데 매진하고 있다. 그래서 일선 학교를 방문할 때면 디보스 장관은 어김없이 현직 교사들의 야유를 받는다. 예산이 줄어들자 가뜩이나 열악한 공립학교 시설은 더 나빠졌다.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학생들을 학교에 모아놓고 수업을 하려면 철저한 방역이 필수적인데, 공립학교 중에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필요한 공간이나 환기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둘째, 미국 교사들은 열악한 처우와 교사를 향한 편견에 이중고를 겪는다. 미국 교사들의 수업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평균 794시간보다 많다. 하지만 이들 월급은 오이시디 평균 정도다. 더 많이 가르치고 더 적은 월급을 받는 셈이다.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교사들이 2018년 6개 주에서 대규모 파업을 진행했지만 처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친민주당 성향이 강한 교사노조 때문에 특히 공화당 지지자 중에는 교사들이 “방학 때 일도 안 하면서 월급은 꼬박꼬박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팬데믹이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를 무리해서 열면, 가뜩이나 바쁜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진다. 학교를 열기 전에 교사 인력부터 충원해야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필요한 지원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학교를 열어야 한다는 당위적인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에서 뉴욕에 처음 놀러 온 친구들은 십중팔구 뉴욕 지하철을 보고 경악한다. 한국의 지하철만 타다가 낡고 냄새나는, 정차역 안내도 제대로 안 되는데 값은 또 비싼 뉴욕 지하철을 타보면, 적어도 뉴욕에 대한 환상을 하나쯤은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지하철도 공립학교도 결국 인프라 문제다.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적어도 병행하지 않으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그만큼 더 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