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나는 역사다] 1992년 서울서 있었던 종교재판 / 김태권

등록 2020-08-06 17:42수정 2020-08-07 02:08

신학자 변선환 (1927~1995)
신학자 변선환 (1927~1995)

기독교 신학대학의 학장이 종교재판을 받고 교단과 학교에서 쫓겨난 사건이 있다. 다른 종교와 대화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중세 유럽이 아니라 1992년에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변선환은 과격한 주장을 펴는 사람도 아니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상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이순신은 교회에 안 다녔는데 천국에 갔을까”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질문이 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 사상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우리 상식과 맞지 않나? 같은 기독교라도 가톨릭은 1960년대 이후 저 입장이다.

그런데 변선환은 불교에 관한 논문을 썼다가 감리교에서 출교당했다. 현대사 굽이굽이마다 사건 사고(!)로 이름난 김홍도 목사가 여기도 등장한다. “1978년에도 그는 변 학장의 출교를 시도한 바 있었다. 당시 감신대 전교생이 발의를 막아 무마되었다. 1992년 5월7일 금란교회에서 종교재판이 이뤄졌고 교인 3천명이 동원되어 감신대 학생들의 진입을 막았다. 나는 현장에서 광기를 느꼈다. 변 선생의 변론은 금란교회 교인들이 부르짖는 소리에 막혀 잘 들리지 않았다.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제자 이보철 목사의 회고다. 재판이 끝난 후 제자 이현주 목사가 찾아왔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씀하신 건 잘못입니다. 저라면 ‘교회 안에도 구원이 있다’고 얘기했을 겁니다.” 변선환은 대답했다. “그거 말 된다. 냉면 먹으러 가자.”

“어려서부터 책이 좋았다”던 변선환은 마지막 순간까지 공부를 했다. 원불교에 대한 글을 쓰다가 책더미 위에 엎드려 숨을 거둔 날이 1995년 8월7일 또는 8일이다.

김태권 만화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