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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는 역사다] 닷새 동안 “알바니아의 왕” / 김태권

등록 2020-08-13 18:24수정 2020-08-14 02:40

오토 비테 (1872~1958)
오토 비테 (1872~1958)

알바니아의 왕이었노라고 했다. 재위 기간은 닷새.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 갓 독립한 알바니아에 들어가 왕족인 척 행세하며 진짜 왕족이 올 때까지 1913년 8월13일부터 5일 동안 왕 노릇을 했단다. 온갖 사치를 누리고 이웃나라 몬테네그로에 선전포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서커스장의 관객들은 넋이 나가 비테의 모험 이야기에 빠져들곤 했다.

사실일까?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알바니아 쪽 기록에는 이런 일들이 없다고 한다. 비테는 서커스단에서 곡예도 하고 만담도 했다. 피그미족을 만났을 때는 명예 추장으로 추대받았다고 했고, 에티오피아에 갔을 때는 황제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독일 대통령으로 출마해 수십만표를 받았으나 후보 단일화를 위해 사퇴했다고도 했다(물론 독일의 공식 기록에 없는 사건이다). 웃고 넘어갈 이야깃거리다. 그런데 알바니아 이야기를 할 때면 비테는 유독 진지했던 것 같다. 독일 관공서에서 “전직 알바니아 국왕”이라 적힌 신분증도 발급받았다. 외국 신문을 만나서도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고, 죽고 난 다음 무덤에도 “알바니아의 왕”이라 새겼다. 스스로는 자기 이야기를 사실이라 믿었을까. 모를 일이다.

어째서 알바니아였을까? 갓 독립한 알바니아는 알려지지 않은 낯선 나라였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는 한국을 두고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자기가 대한제국을 좌지우지했다던 미국 외교관의 회고록도, 평범한 미국 여성 에밀리 브라운이 고종 황제와 결혼해 황후가 되었다는 신문 기사도 나왔다. 물론 한국 역사에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 봐야 할지는 모르겠다. 힘센 나라 사람이 작은 나라를 얕잡아 본 불쾌한 일인지, 평범한 사람들이 왕후장상을 농담거리로 삼은 통쾌한 일인지 말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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