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목ㅣ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행정안전부가 의뢰한 연구에서 인공지능 등 미래기술로 공무원의 25%를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체율이 가장 높은 부처는 뜻밖에도 외교부(38%)인데, 그 이유는 통역·번역 등 공무직이 많다는 것이다. 공무원 전체 인력 가운데 집행 관련 인력은 5년 안에 75%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연구대로라면 외무부 통번역 인력 다수가 머잖아 신기술에 밀려날 각오를 해야 하는 셈이다.
4년 전에는 어땠을까? 2016년은 인공지능 등 미래기술이 화려하게 등장한 해였다. 그 중심에는 ‘도장깨기’ 이벤트를 앞세운 알파고가 있었고, 그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인공지능 번역도 미래기술이 가져올 충격을 예고하는 데 한몫했다. 신경망 번역이라는 신기술을 도입한 기계번역은 실제로 전과 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 전에는 기계도 번역을 하는구나 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번역의 재료로 이용 가능한 수준에 이른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획기적이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다시 기존의 번역 방식을 대체할 수준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며, 지난 4년간 그런 변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현재 외교부에 통번역 인력이 많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기계번역이 현재 이룩한 성과인 동시에 한계라면 문장 단위의 번역이라는 점이다. 두 언어의 문장 쌍을 이용해 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표현을 보여주지만, 문장과 문장이 이어지면서 논리와 맥락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따라가지 못한다. 따라서 문장들을 나열만 해도 대체로 뜻이 통하면 힘을 발휘하고, 맥락을 꼼꼼히 파악해야 할 때면 재료 역할에 그칠 뿐이다. 물론 번역 속도로 보자면 다른 모든 결함이 용서될 수준이다. 이 정도면 현재 인공지능 번역의 쓸모와 사용법이 짐작될 것이고, 이 신기술이 원활한 소통을 위해 우리가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번역에서 맥락을 파악하는 개입이 없으면 아무리 소중한 재료라도 쓰레기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왈츠를 앞으로 백년간 연주하지 않으면 악보가 있어도 왈츠를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모를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하물며 언어는 말할 것도 없다. 문장 하나하나가 빙산의 일각이지만, 일상에서는 우리가 바로 그 빙산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별 탈 없이 넘어갈 뿐이다. 그러나 늘 순탄치는 않다. 밥 우드워드 기자의 책에 나오는 “핵무기 80기” 문장과 관련된 최근의 혼란도 그런 예다. 혼란의 시발점은 그 문장이 우리에게 전제된 맥락과 충돌한 것이다. 가령 북한에 핵무기가 없다는 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문장은 오해의 소지가 거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핵무기 80기는 미국과 북한 어느 쪽에 갖다 붙여도 어긋나 보이기 때문에 맥락이 깨지면서 많은 가능성이 떠올랐다. 이때 인간은 맥락 재구성에 들어가, 이 문장이 속한 문단과 장의 맥락, 책의 맥락, 나아가서는 실제 현실의 맥락을 점검하는 과정을 밟아나간다. 이것이 인간지능이 하는 일이고, 인공지능이 아직은 하지 못하는 일이다.
4년 전 우리나라 인공지능 번역에 깊이 관여하던 어떤 분은 맥락을 파악하는 번역은 아직 먼 일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그것은 우리의 수준일 뿐이고 외국 유수 기업에서 이미 그런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 뒤 4년은 무엇을 보여주었나? 앞으로 5년이 지나면 얼마나 달라질까?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민감한 문서를 다루는 외교부라면 민감한 것을 민감하게 다룰 줄 아는 인간지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여 그들이 그 능력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면서 미지의 미래를 감당하게 하는 것이 현명한 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