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협력에 대한 신호를 잇따라 보내왔다. 당선 후 안팎의 난제가 산적한 ‘바이든 행정부’도 북핵 문제 악화를 막는 남북한 관계 개선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바이든 당선 이후는 ‘남북한의 시간’, ‘문재인-김정은의 시간’이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연합뉴스>
11월3일의 미국 대선에서 모든 여론조사가 예고하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당선은 지난 30년간 한반도 문제를 놓고 반복된 상황을 재현할 것인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9부 능선까지 올랐다가 퇴임하는 미국 대통령과 진전된 한반도 문제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당선자라는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패턴이다.
1980년대 말 북한의 핵개발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임기 초에는 북한에 핵포기를 압박해 긴장을 고조시켰지만, 결국 협상과 타협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북한의 핵포기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맞바꾸는 해법이 무르익을 즈음이면 임기 종료가 다가왔다. 새 대통령들은 전임자들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북핵 문제를 원점으로 돌렸고, 똑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분노와 화염’이라는 표현으로 핵무기를 쓸 수 있다는 위협을 했고,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대꾸했다. 이 위기는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하는 역사적 이벤트로 이어졌다.
문재인-트럼프-김정은 조합은 모두가 임기 초라는 데서 한반도 문제 해결의 희망을 그 어느 때보다도 부풀게 했으나, 결국 오래된 걸림돌을 넘지 못했다. 북핵 해법을 놓고 북한이 주장하는 행동 대 행동의 단계적 핵포기와 미국이 주장하는 핵포기 뒤 보상이라는 문제에 걸렸다.
그리고 2년이 흘러 다시 바이든의 당선이 어른거린다. 김정은-트럼프를 중재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임기를 정리할 시간으로 들어간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것을 쇼라고 폄하했고, 그런 식의 대북 접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무엇보다도 ‘바이든 대통령’은 당분간 북핵 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예상되는 선거 후유증 등 트럼프가 남길 미국 내 분열 등 국내 문제 대처가 급선무이다. 그의 선거 누리집에서 밝힌 48개 정책의제 중 대외정책 분야는 ‘미국 지도력의 복원을 위한 바이든의 정책’이라는 것 하나뿐이다. 대외정책에서도 대서양 양안동맹의 복원과 미-중 관계 안정화가 우선 사항이다.
한국과 문 대통령에게는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다. 안팎으로 산적한 시급한 난제에 봉착한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문제의 악화를 바라지 않는다. 기존의 북-미 정상회담도 부정할 수 없다. 북한 역시 이런 바이든을 곤경에 처하게 할 ‘도발’을 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뉴욕 타임스>의 대북정책 질문에 “나는 트럼프처럼 공허한 프로젝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을 비핵화 쪽으로 전진시키는 실질적인 전략의 일부로서 김정은과 기꺼이 만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포린 어페어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내가 대통령으로서 북한이 포함된 새로운 시대의 군축협정 공약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며 “오바마-바이든 행정부가 협상했던 역사적인 이란 핵협정은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았고, 효과적인 협상의 청사진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파기한 이란 핵협정을 복원하고, 이를 기준으로 북한과 협정을 맺을 수 있다는 용의이다.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향한 북한과의 단계적 협정, 즉 북한이 주장하는 행동 대 행동에 따른 단계적 핵폐기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트럼프 행정부 때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문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삼가고, 영역 밖의 일에 집중했다. 즉 남북 교류와 협력보다는 북-미 관계 타결이라는 거대 담론에 올인했다. 이제는 남북한 관계를 진전시키는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을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국을 극렬히 비난하던 북한도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육성으로 남북 협력에 대한 신호를 잇따라 보내왔다. 북한도 바이든 당선 후에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 실리뿐만 아니라 북-미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도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으로 북핵 문제가 악화되지 않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남북한 관계 개선은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면서도 미-중 관계를 예측 가능한 안정 상태로 만들려는 바이든 민주당 정부에 한국의 몸값을 올리는 방안이다. 미국과 중국도 미-중 관계에 널려 있는 지뢰 중 하나인 북한 변수를 안정화한다는 점에서 이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좌고우면 없이 남북 교류와 협력을 향해 자신감 있게 나아가야 한다. 바이든 당선 이후는 ‘남북한의 시간’, ‘문재인-김정은의 시간’이다.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