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김현영 ㅣ 여성학 연구자
20대 이후 보통 잠은 새벽 두시 이후에 잔다. 글은 새벽 세시에서 네시에 가장 많이 썼다. 지금 이 원고도 새벽 세시반에 쓰고 있다. 야간노동의 문제에서 시작해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종사하는 취약계층의 성별과 연령 통계를 찾아보고 코로나 이후의 고용동향 등을 조사했고 이제 글을 써보겠다고 책상에 앉았다. 일단 야간노동 관련 연구들은 야간노동은 발암물질 2급에 해당하며 최소한 만성적인 수면의 어려움을 야기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웬만하면 밤에 자는 편이 낫다. 연구 결과에서도 증명되어 있고 경험적으로도 확신한다.
코로나 이후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야간 장시간 근무를 해야 하는 곳의 인력은 언제나 부족하다.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인간을 1회용으로 써도 자본은 개의치 않는다. 기계를 멈추지 않고 인간을 계속 투입해서 최대치의 이윤을 뽑아내는 데 24시간 노동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2011년 자동차 생산 제조업에 종사하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싸우며 야간노동의 문제를 공론화하기 전까지 오래 일하는 건 한국 사회에서 문제 자체가 되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10대에 10시간 이상 공부하고 20대부터 10시간 이상 일한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별 비교에서 한국은 노동시간에서 멕시코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연간 2285시간, 하루에 9~10시간을 평균적으로 일했다는 말이다. 싱가포르에서 한국 사람들의 특징을 “쫙 빼입고 아주 오래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왜 기껏 쇼핑을 와서 비슷한 출근복을 고르냐고 했더니 “회사 갈 때 말고는 입을 시간이 없거든”이라고 대답했다는 말도 화제였다고 했다.
요즘 최고의 덕담은 “사는 동안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다. 오래 일하고 적게 버는 사회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이정희 연구위원은 야간노동을 이윤추구형 야간노동과 공공서비스형 야간노동으로 분류하고 전자는 최대한 제한하고 규제하고 후자는 인력을 확충하고 주간교대제 등 적절한 교대제도를 운영하여 최대한 보호와 지원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런 제안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해온 건 관련 기업들이었다. 이러한 규제가 결국은 기업을 망하게 하여 일자리를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대형마트가 최고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순간은 ‘인간을 갈아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사용할 때였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는 2009년부터 공격적인 365일 24시간 영업을 시작하면서 성장세를 이어갔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되면서 월 2회 휴업이 의무화되고 자정에서 오전 10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한 것이 성장세를 꺾이게 했다고 하는데, 영향이 없지야 않겠지만 당시 세계적으로 대형마트는 소셜코머스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중이었다. 경영위기에 처한 대형마트는 무인 셀프계산대를 적극적으로 도입했고 그 결과 마트계산원 여성노동자들부터 사라졌다. 이들은 어디로 갔고 지금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대형마트의 구조조정 이후에도 5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계속 증가했는데 지표를 보면 숙박 및 음식점과 요양보호사 등 보건복지 서비스업 등에 취업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대면형 일자리, 즉 코로나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업종들이다. 비대면형 일자리 역시 콜센터 등 실내밀집형 근무형태였고 이곳들은 집단감염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0년 상반기를 분석한 오이시디 고용전망 리포트를 보면 저소득 비정규직 노동자일수록 재택근무하기가 어렵고, 실직 가능성이 더 높으며, 향후 수개월 동안 수입 전망이 비관적이다. 여기에 더해 여성은 코로나 시대에 무급노동에 남성보다 평균 2시간을 더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9월 한국의 고용동향을 보니 여성 취업자수 감소폭이 남성의 3배였다. 성별 격차가 보여주는 현실은 다음과 같다. 배달, 택배, 운수노동 등에 종사하는 이들은 주로 20대와 55세 이상의 남성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죽기 직전까지 일하다가 실제로 과로사를 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감염병 위험이 큰 곳에서 일하거나, 일자리가 사라졌거나, 무임금으로 일하며 생존의 벼랑에 몰려 있다. 이건희씨 사망을 애도하는 물결 와중에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꼭 쓰고 싶었다. 지면이 짧은 것이 유난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