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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벽지의 흠집 / 정영목

등록 2021-03-05 13:18수정 2021-03-06 02:03

정영목ㅣ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어제 아침만 해도 남산과 직장 뒷산이 얼음 흰빛이더니 하루 사이에 노란 개나리가 피었다. 아직은 무채색이 지배하는 풍경에서 점점이 박힌 노란색은 자연의 백신이 피어난 듯 수줍게 부풀어 오른 작은 희망의 빛깔이다. 드디어 접촉 생활의 재개 조짐이 보이는 걸까.

접촉 자체가 생계와 직결되는 사람들의 절실함이야 말이 필요 없겠지만 비접촉 생활로 인한 곤란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이라고 해서 기대감이 없을 리 없다. 기대감의 바탕에는 불편의 해소라는 소박한 욕구도 있지만, 왠지 이것이 가상 현실 같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도 적지 않은 듯하다. 비접촉적 현실 자체가 엄청나게 강화된, 게다가 위험을 감수하는 접촉 노동의 결과인 동시에 다수가 노동의 기회를 상실한 결과다. 그러나 비접촉이라는 조건 자체가 그런 실재와의 접촉 또한 차단하기에 마치 이런 현실 자체가 지속 가능한 완결적 현실인 양 익숙해진 채 살게 된다. 시멘트벽에 아름다운 벽지를 발라놓고 그 내부의 공간이 나의 일상인 것처럼 살아가는 셈이다.

하지만 접촉의 세상으로 돌아가면 그런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섣부르다. “조태준에게 그들은 벽지의 흠집처럼 거기 있어 잠깐 시선에 걸리기는 하지만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아 익숙해진 작은 흔적에 지나지 않을 것이었다.”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에 나오는 이 구절은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해고자 이준오의 생각이다. 조태준은 회사 대표지만 사실 우리 누구나 대입될 수 있는 “추상적 기호”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준오의 농성장은 굴뚝 꼭대기의 비좁은 공간으로, 그는 이곳에서 아래와 연결되는 마지막 사다리조차 치워버리고 자발적으로 극단적 비접촉 상태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이렇게라도 해야만, 그렇게 일 년이나 지나야만 역설적으로 작은 접촉의 실마리라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 굴뚝보다는 낮았을 독산에 올라가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고 다짐하며 남포를 입에 물던 동혁, 살았다면 지금은 여든을 바라볼 <객지>의 그 노동자도 준오 못지않게 결연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준오의 시대에 “이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다. 이준오의 철도원 할아버지와 동생은 준오보다 처절한 삶을 살았을지언정 자신을 “벽지의 흠집”에 빗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세상 안에서 세상의 주인이 되려고 싸웠고 그래서 반대편에서도 그악스럽게 탄압했다. 서로 치열하게 접촉했다. 그러나 이준오는 세상 밖으로 밀려나 있고 사십오 미터 높이의 굴뚝에라도 올라가야만 벽 너머 세상의 눈에 띌 수 있다. “온 세상은 우리의 편이 아니며 겨우 한발짝씩 느리게 변할 뿐”이라는 이준오의 인식에서 “우리”는 “온 세상” 속에 있지 않다.

세상의 안과 밖을 가르는 벽은 이것 하나가 아닐 것이다. 여러 이유로 세상의 점유권을 잃고 절망하는 수많은 이준오가 있고 그들과 세상의 접촉을 막는 수많은 벽이 있을 것이다. 밖에서 보면 이 벽들이 사방에서 겹겹으로 가로막고 있어 좀처럼 진입이 어려운 미로와 같은 공간, 안에서 보면 벽에 바른 벽지의 아름다움으로 여기가 전부라는 환각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지금의 세상인지도 모른다. 그 세상이 주는 느낌이 지금 비접촉 세상이 주는 느낌의 대안이 될까. “온 세상”이 안과 밖으로 나뉘는 순간 “온 세상” 자체가 신기루가 된다. “세계란 원래 우주처럼 무심하다. 괴괴하고 적막하고 고요하다. 무료하고 가치 없는 일상이 그들 모두를 무너뜨렸다.” 이것이 비단 세상 밖에 있는 사람들만의 운명은 아닐 것이다. 담벼락 위에 노랗게 개나리가 피어나는 새봄에 우리는 어떤 접촉의 기대를 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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