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과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 앞서 취재진 앞에 서 있다. 연합뉴스
대북 정책을 조율할 목적으로 출범했지만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아온 ‘한-미 워킹그룹’이 폐지된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21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서 한-미 워킹그룹을 종료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한-미 워킹그룹은 2018년 11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항구적 평화, 대북 제재 이행 등에 관해 양국의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북 제재 문제를 미국의 여러 관련 부처와 일일이 논의할 필요 없이 한 협의체에서 원할하게 다룬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유엔 제재를 명분으로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을 낳았다.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행사에 동행한 취재진의 노트북 반출을 막고,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북한 지원 사업을 무산시키고,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자산 점검을 위한 방북을 막은 것 등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이 과도한 잣대를 들이대 남북관계를 통제하고 있다는 비판이 국내에서 확산됐을 뿐 아니라 북한의 거센 반발도 불렀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친미 사대의 올가미”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한-미가 워킹그룹을 폐지하고 새로운 대화의 틀을 만들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를 밝힌 것을 진전시킨 것으로, 북한을 향해 대화 복귀를 설득하는 ‘신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지금 북한과 미국은 대화 재개를 둘러싸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대화에도 대결에도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하자,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흥미 있는 신호’라고 했다. 하지만 김여정 부부장은 22일 “꿈보다 해몽”이라며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는 담화를 냈다. 북·미가 서로를 향해 ‘먼저 움직이라’며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중요한 국면에선 한·미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마련해 북한을 대화로 이끌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협력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이날 성김 대북특별대표를 만나 이산가족 상봉과 이를 위한 금강산 방문을 한-미가 공동으로 추진해보자고 제안한 것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가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창의적인 조율을 해야 할 때다.